배상준 저 『메뉴판해석학 –일본 편』
나도 일본 글자 다 읽을 줄 안다. 아주 어려운 한자만 빼고. 일본식 발음은 몰라도 한자 뜻은 이해한다. 그래서 여행 다니는 데는 지장 없다. 그런데 가이세키 요리점, 영어나 한국어판 메뉴가 없는, 소박한 이자카야에 가면 난감하다. 파파고도 실소 터지는 해석만 보여줄 뿐, 큰 도움 안 된다.
가장 난감한 건, 붓글씨로 그날의 메뉴를 적어서 내놓은 곳들이다. 아는 메뉴만 먹어야 한다.
저자와 나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그는 일본어 회화도 잘 못하면서, 메뉴판을 조사 연구해서 정복했고, 나는 아직도 못 외워 버벅대고, 못 읽는다는 것. 그래서 그는 책을 냈고, 나는 돈 주고 책 사본다.
하지만, 저자가 일본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서 직접 맛본 경험으로 쓴 책이라 일본어 수준이 비슷한 나에게는 무척 도움이 된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조리법에 따른 요리, 2장은 면 메뉴판, 3장은 술집, 밥집 현장 학습.
외과 의사인 그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남편이랑 그의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으며 한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와, 대단한 사람이네. 파워 블로거야. 800만도 넘어요.”
“이전에 독일 맥주 책도 썼대요.”
“홋카이도 술음식 기행도 해설했어요.”
사람뿐만 아니라, 책도 글도 무겁지 않다. 유쾌하다. 요즘 들어 더욱, 인상 쓰고 있는 글, 심각하게 폼 잡고 말은 하되 뭔 말인지 알 수 없는 글, 질질 짜는 글, 나만의 우수를 우아로 착각하는 글, 이런 글들이 역하다. 그저 담백한 글, 맵거나 단 글, 혹은 깊이 있게 인생의 깨달음을 전하는 글들이 큰 울림을 준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평생의 가벼움과 우울을 벗어던지고 유쾌하게. 그리고 잔잔하되 행복하게.
아울러 제주에서 오사카가 직항이 있어 자주 가지만, 좀 더 목적을 갖고 일관성 있는 여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깨닫게 된다. 차차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젊었을 때는 튀김이나 육류를 좋아했지만, 이제 생선도 구이보다 슴슴한 조림이 편하다.
책의 1장, 조림 편에서 몇 가지 요리의 이름을 배운다.
‘일본식 고기감자(니쿠자가,肉じゃが)’, ‘돼지고기 깍둑 썰어 조림(가쿠니、豚の角煮)’, ‘닭고기 뿌리채소 간장 조림(치쿠젠니、筑前煮)’들은 일본 호텔 조식에서 흔히 본다. 한국에도 비슷한 요리들이 있지만, 일본식 조미료가 들어가 맛이 다른 음식들이다. 올 10월의 여행에서는 나고야에 흔한 ‘고기내장 된장 조림(도테니、どて煮)’도 먹어보려고 적어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즈케모노(漬物)를 코-노모노(香の物), 오싱코(お新香)라고도 한다 해서,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코-노모노는 고급요릿집에서 격식 있는 절임 반찬을 부르는 말, 오싱코는 음식점에서 단무지나 오이절임을 가볍게 대화 중에 부르는 말, 즈케모노는 가장 넓은 의미의 절임 음식을 부르는 말이었다.
최근 일본인과 대화 중에 나눈 이야기다. 내가 즈케모노를 좋아해서, 교토를 여행하면 항상 몇 가지를 사 온다고 했더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건 한국 김치이다.”
이렇게 공평하게 문화가 교류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나. 이제야 제대로이다.
‘교토 3대 절임(京漬け)’
스구키즈케(すぐき漬け) - 순무,
시바즈케(しば漬け) - 가지,
센마이즈케(千枚漬け) - 순무를 얇게 썰어 발효시킨 것
(책 66쪽)
이 책에는 요리 이름이 무진장 나온다. 나도 내게 필요한 요리 이름을 따로 정리해 둔다. 이제 도저히 외우기는 불가능한 나이. 외워지지 않으면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으면 된다.
책은 기본적으로 글자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둘 다. (가타카나를 능숙하게 읽고,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함정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일본어와 일본 여행 경험이 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데.’
싶었다.
“여보, 여기 나오는 용어들이 생소하고, 처음 보는 단어들이라 잘 안 외워지지?”
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럼 이 메뉴 정리한 것을 저장해 놔요.”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5/24/7RISXPGOMBDNDI3ELWCETRJJ6Y/
잘 읽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어 저자에게 다시 감사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일본주 편을 만들려니, 출판사 측에서 그건 장차 다른 책으로 만들자고 했다 한다. 그의 새 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