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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리 Jan 29. 2021

권력이 인간의 정신에 남긴 것 2

<쇼유키(소우기;小右記)> 죽어서도, 내 자손의 영광을 위해

    “권력이라는 프리즘으로 인간의 운명과 역사의 궤적을 살펴보는 일은 언제나 필요합니다”(정승민 <역사 권력 인간>)


이런 말이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는 ‘권력’이라는 것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흔적이 짙고 강렬한 문제의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세상이 아직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서 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오랜 세월 역사와 인간 삶의 흥망성쇠를 낳게 한 주범의 하나였다.

권력욕의 집착이 어떠한 것인지, 다음의 사료는 말해준다.     


관슈(観修) 소즈(僧都)가 다가와 말했다. <근자에……황태자후(皇太子后)  후지와라 스케코(藤原娍子)를 위해 수법(修法)을 행하고 있었는데, 무서운 영(맹령, 猛霊)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구조 승상(九条丞相) 후지와라 모로스케(藤原師輔)다.……(생전에) 나의 자손들의 번영을 위해 각종의 주술을 행하였는데,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특히 오노노 미야(小野宮) 다이쇼코쿠(太相国; 배다른 동생인 사네요리(実頼))의 자손들이 망하길 몹시도 원해 음양술(陰陽術)을 용해 그 자손이 끊어지길 바랬다.……(그래서) 지금 나는 남을 멸하려던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한없이 무겁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기약이 없다.

오노노미야 다이쇼코쿠의 자손이 태어나려 할 때 나는 반드시 그곳에 가서 그 일을 방해할 것이다. 살아생전 마음으로부터 바라던 바이기 때문이다.……스케코(娍子, 동모제(同母弟)  모로마사(師尹)의 자손)가 이미 임신한 듯하다. 때문에 와서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자손의 씨를 근절시키기 위해서이다”>    

( <쇼유키(小右記)>正暦4(993)년 윤 10월 14 일조)


이 무시무시한 망령(亡靈)의 이야기는, 당대의 문장가였던 후지와라 사네스케(藤原実資)의 일기 <쇼유키(소우기;小右記)>( 또는 <오노노미야 우다이진 기(小野宮右大臣記)>)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책은 982-1032년간의 시기를 기록한 현장 기록이다. 설화나 소설이 아니다.     

 

모로스케는 일본 최고의 귀족 세력가 후지와라 섭관가(攝關家) 구조류(九条流)의 선조를 이룬 사람이다. 그는 자손들을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교훈서<구조도노 유카이(九条殿遺誡)>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죽어서도 이승을 못 떠난다.

동생인 후지와라 모로마사의 자손 스케코가 산죠(三条) 천황의 아이를 임신하자, 이미 산죠 천황의 황태후가 되어 있었던 자신의 후손 기요코의 지위가 위험해질세라여서이다.

고인(故人) 후지와라 모로스케는 타인의 몸에 빙의하여 이야기를 한다. “다른 자손의 씨를 근절시키기 위해”“와서 괴롭히고 있”노라고. 이 망령은 살아생전부터 오로지 자신의 집안의 번영을 위해 분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렇게 ‘남을 멸하려던 생각’때문에, 죽어서 무거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자손’이 권력의 좌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그 자신 살아생전의 권력욕으로, 죽어서도 그 집착을 가진 망령이 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손’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는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력욕의 표출일 뿐이다.       


 스토쿠 상황(崇徳上皇)이 피로 물들인 대승경(大乗経)을 앞에 두고 해신(海神)에게 원한(저주)을 기원하는 모습(葛飾北齋의 삽입화(滝沢馬琴 저<椿説弓張月>国立国会図書館 소장);

권력 싸움에 패해 귀양간 스토쿠 상황은, 사경(写経)한 5부대승경(五部大乗経)을 수도 근처 절에 봉납하여 후세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으나, 고시라카와(後白河)천황이 이를 거부하자 이에 격노, "고시라카와는 미래영겁까지도 적"이라 선언하고 "일본국의 대마연(大魔縁)"이 될 것을 결심, 혀 끝을 물어 그 피로 맹세의 글(誓状)을 적었다. 그 뒤 원령이 되어 천황을 괴롭힌다(<保元物語>).

   



<승자의 뇌>를 쓴 이안 로버트슨에 의하면, 권력의 맛을 본 뇌는 도파민이 증가해 마약중독과 같은 현상을 보이며 점점 더 큰 권력을 탐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뇌가 없어져도 그 뇌에 찍어 놓았던 욕망 덩어리의 의식이 남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닌가.      


강렬한 권력욕은 죽어서까지 자손대대로의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 몸이 없어져 그러한 욕망이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비물질적인 인간 마음은, 물질적 몸의 소멸과 상관없이 남아 오로지 기억된 생각 속을, 집착의 망념 속을 헤매는 것이다. 그것은 ‘한없이 무거운’ 고통이면서 ‘벗어날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대부분의 권력욕들은 그 자신 일 개인뿐만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겨운 폐망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그 권력 추구자가 높은 위치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 여파는 더 심하다.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권력욕이란,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거나 기대하는 인간 마음의 허기(虛氣)가 그 근원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남에게 대접받고 인정 받으며, 자신의 자존을 세우고 싶어 하는 뿌리 깊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위해 외적으로는 남보다 나은 지위나 경제적 조건 등을 누림으로써 잘나 보이고 싶어 한다.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이런 마음은 열등감의 발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상 애써 외적 조건을 얻었다 하더라도 정작 나의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어느 구석엔가 상주해 있던 ‘허기’ 때문이었다.


욕망을 좇아 정신없이 가다 보면 그동안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여서 돌아온 반격, 시기와 질투, 힘겨운 경쟁의 싸움들.


그리고 그 시간들 끝에 모든 상황은 응당 ‘소멸’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영원히 누릴 내 것은 없는 것이었다.


역사 공부는 이것을 너무나 통렬히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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