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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Oct 23. 2019

우는 공간으로서의 화장실

오늘의 행인1 : 화장실 옆 칸에서 훌쩍이던 여자



나는 내 방광을 좀 자랑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오죽하면 대학교 입학해서 새터(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 처음 말을 섞었던 동기에게 그 말로 나를 소개했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선배들 눈치 보여서 못 가겠어. 넌 괜찮아?”
“응. 나는 방광이 튼튼해서. 되게 잘 참아.”

동기 어이없는 내 자랑에 폭소를 터뜨렸고, 그 바람에 급박뇨를 느끼고 선배들 눈치고 뭐고 더 못 참고 화장실로 튀어갈 수 있게 됐다.

다른 데는 근육도 없으면서 방광에만 근육이 몰린 걸까. 사실 그게 방광 기능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소변을 잘 참았고, 그걸 내 맘대로 ‘방광이 튼튼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던 게, 임신을 하니 완전히 달라졌다.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찾게 됐다. 식당이나 카페나 백화점, 마트 등 장소 가리지 않고 화장실이 보이면 일단 가야 하는 지경이 됐다. 심지어 길 걷다가 신호가 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눈에 보이는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화장실이 있는지 살폈다.

그날도 그랬다. 다행히 건물 1층에 치마 입은 여자와 바지 입은 남자를 그린 진부한 마크가 보였고, 화장실 손잡이는 찰칵, 하고 급한 손님을 친절히 맞아줬다.
아마 다들 알 거다. 천하를 얻은 기분. 이제 다 이루었다, 싶은 안정감. 찰나지만 소변 하나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영광스러워해야 하는지 남사스러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 옆 칸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훌쩍. 훌쩍, 훌쩍.


소변 누는 소리도 아니고 대변 누는 소리도 아니다. 이건 분명 그거다. 우는 소리.
있는 힘껏 방광의 근육을 조절해서 내 물줄기 소리를 낮췄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는 공간으로서의 화장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작 시절, 난 꽤 좋은 사수를 만났다. 선배는 개념 없던 나에게 방송작가의 A to Z를 알려준 존재다. 하지만 배울 게 많은 사람이 보통 그렇듯, 그 깐깐함 때문에 혼날 때가 많았다. 내 실수고 내 잘못이라 납득되는 가르침도 있었지만 억울한 순간도 몇 번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취침권을 박탈당했을 때였다.

방송 만는 과정 중에는, 촬영본을 보이고 들리는 대로 다 받아 쓰는 ‘프리뷰’라는 업무가 있다. 1시간짜리 테이프를 프리뷰 하기 위해서는 2~3배의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잠잘 때 빼곤 온종일 테이프를 돌리는 다큐멘터리 류의 촬영분을 프리뷰 하는 데 드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요즘은 대부분 ‘프리뷰어'를 여러 명 고용해서 프리뷰를 맡기고 취재작가는 다른 업무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취재작가도 프리뷰에 함께 덤벼들어야 했다. 그래야 프리뷰 비용이 줄어들고, 그래야 제작비가 절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촬영에 들어가면 취재작가는 다음 촬영 아이템을 찾으면서, 그때그때 현장에 필요한 섭외도 하면서, 밤에는 프리뷰도 해야 하는 거다. 방송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뭐냐 물으면 구성력이나 섭외력이나 문장력보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체력’인 이유다.


밤새 프리뷰를 했지만 두어 시간의 분량이 더 남았을 때, 선배는 테이프를 보기 위해 아침 7시부터 출근을 했다. 핫식스를 몇 캔이나 비웠지만 졸음이 달아나지 않아서 선배가 촬영분을 보는 동안 30분만 자고 일어나겠다고 말을 했다. 근데 이럴수가. 안 된단다.

안 된다니? 내가 졸려서 자겠다는데 안 된다니?? 자고 싶은데 안 되는 게 어딨어??!! 반항심이 마구 들었으나 프리뷰가 좀 급하니 몇 시간 남은 테이프를 마저 해치우고 자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 궁둥이를 붙이고 손가락을 열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도 훌쩍 넘기고 나서야 프리뷰가 끝났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 너무 억울했다. 30분 자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잠은 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화장실 문 앞에 선배 얼굴을 그려놓고 (속으로만) 고래고래 소리치며 숨죽여 울었다. 우는 것도 빨리 울어야 했다. 언제 선배가 찾을지 모르니까. 쌓아놓은 울음을 빠르게 뱉어내고는 시뻘게진 눈시울을 정리하는데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밥도 못 먹었다. 너무 억울해서 또 엉엉 목을 놓았다(물론 음소거로).


사무실에 갔더니 나를 불쌍히 여긴 조연출이 베이글과 우유를 몰래 건네줬다. 세상에. 은인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만 밥을 못 먹은 게 아니고, 선배도 아무것도 안 먹고 테이프를 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 혼자 이걸 먹을 수는 없었다.
베이글과 우유가 든 봉지를 품에 안은 채 몰래 숨어 들어간 곳은, 다시 화장실이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 제법 따뜻한 베이글이 옅은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단언컨대 천상의 맛이었다. 옆에서 누가 오줌을 싸든 똥을 싸든, 변기 위에서 3분간의 꿈같은 식사를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나는 한동안 화장실에서 자주 울고, 가끔 먹었다. 그러다 적당히 연차가 차면서는 더 이상 화장실에서 울지 않고 먹지 않게 되었고, 온전히 배뇨와 배변의 공간으로 사용 되었다.

내가 그러지 않아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칸막이 너머의 저 훌쩍임을 듣자니 다시 이 공간이 좀 안쓰러워진다. 여전히 일이 힘들고 선배가 어려운 누군가는, 화장실의 새하얀 변기 위에서 위로받고 있구나.

옆 칸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여보세요. 어. 하... 진짜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나 화장실. 어...

짧은 통화를 끝내고 다시 조금 훌쩍인다. 아무래도 상사 힘들게 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찔하다. 나는 누군가를 화장실로 보낸 적이 없던가. 몰래 울게 한 적이 없던가. 몰래 먹게 한 적이 없던가. 생각나는 사건같은 건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원래 가해자는 기억을 잘 못 하는 법이니까.

최대한 조용히 볼일을 보고 나와서 손을 닦는데, 여자의 훌쩍임이 그치고 두루마리 휴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저 거친 휴지로 눈시울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운 티 내지 않고, 의연하게.


화장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들어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회사 로고들이 몇 개 보인다. 중소기업 몇 개가 모여있는 건물이었다.

화장실은 똥만 싸고 소변만 보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냥 이렇게 급할 때 찾아서 인간의 기본 욕구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곳. 변기에 앉기까지 잘 참아낸 튼튼한 방광 근육에나 감탄하고 마는 보잘것없는 곳. 직장의 화장실에서는  기본적인 게 이렇게나 어려운 건가 보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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