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잉조랭이 Jan 19. 2022

적당히 성실하게, 열심히 우울하게

우울증과의 전쟁


사람이 극도의 우울에 빠져있으면 하는 생각은 엇비슷하다. 우울에 빠지는 계기는 달라도 생각하는 결과가 같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모두 존엄성을 가지고 있고 고귀하다고 말하는데, 어째서 우리 자신은 모두 비슷하게 죽음을 소망할까? 우리는 감기에 걸려있다. 코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다. 숨을 쉬지 못하는 우리는 산소가 결핍되어 가장 안전한 나의 집이라는 자리에 쓰러져서 말한다.


"사라지고 싶다."



나는 내가 사라지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내가 글을 못 써서가 아니었다. 문예창작과로 유명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신춘문예에 들어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사라지고 싶은 이유는 굉장히 지극히 이기적이고 간단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귀찮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질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너만 혼자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여기서 참 우스웠던 것은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살면 내 삶은 괜찮아질 것이고, 그래. 나보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내가 아닌데 어쩌라고? 지금 나는 미치게 아프고 힘든데, 남들이 더 아프든 힘들든 어쩌라고? 정말 어쩌라고라는 말만 나왔다. 내가 그런 말로 힘이 났다면 아이쿠, 이럴때가 아니다 하고 일어났지 않을까? 사람들은 참 자기밖에 모른다. 그리고 나고 나밖에 모른다. 우리는 사회와 공동체라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정말 다들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문제에서도, 하물며 친구를 만나는 일에도 우리는 각자의 '이기주의'가 발달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지만, 이건 확실히 이기주의가 맞다. 내 좋을대로, 나의 편이 되어줄만한 친구를 포섭하여 함께 식사하고 함께 취향이 맞는 카페에 가는 것이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행위에 들어갈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은 안심하실 수도 있다. 


우리의 집구석 폐인이 드디어 사람을 만나 사회생활을 한다니.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도 부모님의 이기주의는 발동한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어째서 이기주의냐고 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존재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어떤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나아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팔할이니까.


부모의 사랑은 절대로 아가페적이지 않다. 신에 가까운 사랑을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다. 신에 가까운 사랑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녀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가 조금 클때까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 줄 알고, 그렇게 하는 어린 자녀들이 당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말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왜? 


"알면 불편하니까."



그래서 시작했다.

불편한 나와의, 당신과의 전쟁을.






작가의 이전글 앤 셜리, 네 수다에 용기 한 스푼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