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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Feb 18. 2021

여행, 네일 그리고 너의 결혼식

-과테말라에서 강원도로

도연에게,


아쉽게도 너의 답장을... 너의 바람과는 달리 아침에 시호 아침밥을 해먹이며 시호가 오물오물 제 밥을 먹는 동안 읽었단다. 그리곤 지금 다시 밤이 되어 시호를 재워놓고 조용한 집에서 (그렇지만 시호가 깨서 울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시 너의 답장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어. 역시 밤에 읽으니 다가오는 울림이 다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가 살고 있는 너의 세계가 너무 아름다워서 엉엉 울었다니! 역시 낭만 타령엔 너만 한 친구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말이야,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산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시호에게 얼른 가르쳐주고 싶다고 생각할 때면 늘 여행부터 떠올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호가 여행을 통해 다채로운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삶을 들여다보고.. 뭐 거창하게 여행을 통해 깊은 깨달음이 생겨서 인생이 바뀌고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일상에서는 인생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는 아니지만 확실히 여행이 우리의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거든.  아주 마음에 드는 여행을 하고 난 후, 돌아온 일상이 하루하루 아름다웠던 경험이 나에겐 너무나도 특별했어. 물론 나의 일상은 내가 떠나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겠지만 일상을 살아내는 내 태도가 바뀐 것이겠지. 반대로 고단하고 힘겨웠던 여행을 하고 난 후에도 돌아온 일상은 포근하고 따듯해서 너무나 달콤하지.


여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에겐 아마도 3월 말에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 있을 것 같아. 과테말라에서 가장 길게 쉬는 연휴인데 '세마나 산타'(영어로는 'holy week' 한국어로는 '성주간'이라고 해)라고 해서 부활절 직전의 연휴야. 이곳 사람들은 주로 그때를 여름휴가처럼 여기는 건지 바닷가 쪽으로 많이 여행을 간대. 그래서 바닷가 쪽의 괜찮은 리조트들은 이미 예약이 다 찼을 거라고 하더라고.  난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어디로든 떠나긴 떠날 예정이야. 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숙소나 여행지는 시호와 함께 가기에 편한 곳은 아닐 걸로 예상됨에 따라...(한결같은 내 취향ㅋㅋㅋㅋㅋㅋㅋ) 많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나의 오늘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손톱을 칠하러 네일숍에 다녀왔거든. 나는 기분전환의 가성비는 손톱이나 발톱을 색칠하는 게 짱이라고 여기는 타입이거든. 머리 스타일을 바꾸든, 쇼핑을 하든.. 뭘 해도 손톱만큼 저렴하게 끝나는 건 없는 것 같아. 물론 내가 화려한 손톱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기본 스타일로만 칠하기 때문에 저렴하게 끝나는 것도 있지만. 한국은(파나마에서도 그랬고) "젤 네일 해주세요"하면 기본적으로 큐티클이나 굳은살 같은 걸 정리해주고 색칠을 하잖아. 근데 여기는 "젤 네일 해주세요"했더니 손톱 모양만 다듬고는 바로 매니큐어를 꺼내서 바르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 이거 큐티클 정리 안 해줘요?" 했더니 너무 지저분한 것들만 좀 잘라내더니 곧장 바르기 시작하더라고. 그런데 중남미 사람들은 정말 손재주가 없거든. 매니큐어도 막 비뚤비뚤 혹은 떡지게 발라놓기 일쑤고(네일숍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바른다니까?? 어이가..) 그래서 늘 처음 가는 숍에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에헴- 어디 잘 칠하나 한 번 보자..' 관리감독을 하게 돼. 맘에 들게 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지정해서 다니곤 했는데.. 과테말라에선 아는 사람이 없으니 모험을 해야만 했지. 오늘도 역시 바르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벌써 딱! 맘에 안 드는 거야. 막 손톱 살에 다 묻고 난리가 나더라고. 그래도 다행인 건 오픈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곳이라 매니큐어가 제법 새것이어서 떡이 지는 지독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 다 끝나고 계산을 하러 갔더니.. 만원이래. 네?????? 만원????? 헐??? 나 여기 또 와야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어. 만 원짜리라고 생각하고 손톱을 들여다보니 이만하면 곧잘 발라놨다 싶고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한테 물어보니 손톱을 정리하는 걸 따로 비용을 내면 각질 제거도 해주고 공들여서 싹 해준다고 하더라고. 칠하는 것보다 그게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 어쨌든 오늘 만원으로 기분전환이 얼마나 확실하게 되었는지 아주 손을 하루 동안 79번은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아참, 내가 오늘 보니 우리의 편지가 70통이나 쌓였더구나. 지난 편지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주욱 꽤 많이 훑어봤어. 내가 너에게 결혼을 장려하던 편지를 지나 네가 나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던 편지를 읽었지. 거기에 쓰여있기로는 '내년 봄에 집 마당에서 가족끼리 조촐한 예식을 할 예정이야.'라고 돼있던데.. 곧 그 봄이 다가오는 것 아닌가 싶어서 문득 진행상황이 궁금해지더구나. 원빈&이나영 결혼식마냥 막 가마솥에다가 잔치국수 끓이고 그러는 건지.. 헤헤헤


보고 좀 해보련^^^^


그럼, 답장 기다릴게! 입춘은 이미 지났으니 한국에 거센 바람이 분다는 오늘은 꽃샘추위가 아닐까 싶어. 감기 조심해!


추신: 시간 날 때 답장 좀.

과테말라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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