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더 사랑하기
SNS가 넘치는 세상이다. 모니터 너머로 정말 전 세계 구석구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다. 개인이 곧 매체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다 보니, 한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이 쉽게 반영되어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시선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침대에 누워 시애틀의 유명한 커피 체인 1 호점을 구경할 수 있고, 사무실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과는 비교하기가 어렵겠지만,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으면서 내 기호에 들어맞는 여행의 정취를 느껴보기엔 그리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이 반영되다 보니까 어떤 것에 대한 극찬이 너무 과장된 것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인생 맛집이라며 소개된 곳을 방문했지만 그냥 평범하게 느껴졌다든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정말 멋지고 예뻤던 그곳에 가보니 실제로 그렇게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는 식 말이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지 그 자체에 대한 기대는 조금 접게 된다.
추천하는 곳이나 랜드마크에 들르는 것보다는, 여행을 기획하고 여행길에 오르는 과정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훨씬 값어치가 있는 것 같다. 필요한 것과 가져가고 싶은 것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완성된 배낭, 그것 하나만 메고 살아갈 수 있는 걸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지내온 공간이 얼마나 많은 걸로 채워져 있었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여행 계획 도중에 얻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 어떤 생생함은 잠 못 드는 밤을 선물해준다. 여행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현실을 잠깐 제쳐두고 떠나는 홀가분함이 있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겪게 되는 각종 일화들은 많은 깨달음이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조각이 된다. 여행의 목적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여행은 우리의 삶과 매우 닮았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무언갈 목표에 두고 달성하려 노력한다. 그것은 습관일 수 있고, 점수나 수치일 수도 있고, 취직이나 결혼 같은 이벤트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토록 간절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에, 성취감과 허무함을 동시에 느껴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은, 이런 도달점 보다 이를 향해 나아갔던 그때가 참 그립거나 소중했다고 기억에 남는 경우가 더 많다.
한 개인의 삶에서 결과란 한 지점이고 과정은 한 기간이다. 결과는 분명 파급력이 있을 수 있지만, 과정이 차지하는 긴 시간을 잠깐씩 멈춰 서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만큼 그런 삶을 산 게 된다. 그런 삶이 나중에 혹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거쳐가고 있는 이 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달린 거다. 옛 선조들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다는 말처럼, 'Carpe Diem'이라는 말도 그냥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을 즐거이 보낼 수 있는 사람에겐 좋은 소식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목표를 향하는 데 있어 굉장한 추진력을 주기 때문이다. 행여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건 그대로 삶의 주름이자 드라마의 재료로 쓰인다. 인생 전체를 봤을 때에, 무언가 달성하거나 되는 것보다, 그것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게 더 중요한 건 아닐까?
If 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you can think of nothing but writing, then you’re a writer.
Rainer Maria Rilke, <Letters to a Young Poet> 中
가끔 자기 취향에 대한 고집이, 진정 그게 필요한 게 아니거나 없어도 스트레스가 안 큼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고집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그 사실에만 매몰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이를 보고 있자면,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질 생각 해 볼 수 있겠지만, 대게 생각이나 마음의 유연함 혹은 여유를 잃었을 때에 이런 경우를 더 빈번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넉넉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진다.
나만의 취향은 가지되, 이를 고집하지 않아 보자. 예를 들면, 누구와의 만남에서, 무언갈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 그들의 선택에 맡겨보는 식이다. 이때부터는 내게 익숙하고 기호에 맞는 것만이 아니라, 정반대일 수도 있는 세계에 대한 모험이 시작된다. 그게 나와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를 더 알게 되는 시간이 된다. 여행도 그런 게 아니었던가.
덧붙이면, 내게 딱 들어맞다 안 맞다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 이게 얼마큼 어떠어떠한지에 대해 중심을 두어보면 더 재밌어진다. 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즐겨보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바라보다 보면, 정말 집을 나설 때부터 여행이 아닐 수 없게 된다. 평소 가보지 못한 골목길을 걸어보든지, 반대쪽 손으로 수저를 든다든지, 상대의 기호에 온전히 맞춰본다든가 썩 내키지 않는 음식에 도전해본다든지, 누군가가 즐겨찾기 해 둔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여행자가 되어있다. 그렇게 눈 앞의 순간들에 좀 더 애정을 가지면, 내가 여기에 살아있다는 느낌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 역시 뒤따른다. 지금이 참 좋아진다.
오늘의 여정을 좋아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들을 찾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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