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잎풀 Nov 12. 2016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어

가치 탐색자 되기

 

행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본보기가 되어 내가 앞으로 지향할 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고, 그들에 둘러싸인 내가 안정감, 평안함 혹은 행복감 같은 것들을 더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일종의 상승효과라고 할까.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신을 일부로 안타까운 처지에 빠뜨림으로써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관심이라든지 경험을 직접 해보려는 식의 이유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들의 끝에도 결국 각자 나름의 행복을 얻기 위한 목적이 있다.


행복이냐 불행이냐는 그저 내가 지금을 살아간 결과로 따라오는 산물인 것 같다. 가령 내가 지금 당장에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정말 그렇게 됐다면, 행복감보다 앞선 건 그 생각이 아닌가. 원하던 일을 이뤄도, 맛있는 걸 먹어서 오는 행복함도 마찬가지다. 결과란 미래의 일이다. 미래는 우리가 통제할 수가 없다. 원하는 대로의 미래가 펼쳐질 수 있게 확률을 높일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변수가 언제 등장할지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따라서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매 순간순간을 더 집중해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에 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굳이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행복만을 바라보고 있는 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행복해야 된다'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히면, 내게 일어난 일들을 만족과 불만족으로 평가하게 되고, 그게 나 혹은 내 삶의 상태를 결정짓게 만든다. 콕 집어서 불행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건 분명 또 다른 행복이 아님을 야기하는 꼴이다. 항시 '행복해야 된다'는 마음가짐, 그 조급함이 문제인 것 같다.




긍정적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행복에 대한 주제로 생각을 해볼 때에, 많은 경우에서 긍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왜 그것을 선택해야는지를 물으면 그것이 주는 효과, 그러니까 나 혹은 우리를 더 밝게 해 주고 그럼으로써 스트레스를 적게 받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비슷한 걸로 많이 웃어라는 말도 있다. 웃음이라는 건 긍정적이 되는 것에 비해 좀 더 몸에 대한 이야기다. 웃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거나 그럴수록 더 웃음이 늘게 된다는 것은, 계속 같은 일을 행하고 익숙해지면서 얻게 되는 습관의 문제이거나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 등 신경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다. 웃음으로써 도래되는 각종 신체 반응의 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긍정은 좀 더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고 볼 것인지, 반이나 남았다고 볼 것인지 처럼 어디서부터 바라볼 것이냐에 대한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긍정적이 돼라'는 것에는, 내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리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개입된다. 내 앞에 놓인 일이 내게는 맞지 않아 정말 곤혹스럽거나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도, 내 몸과 정신의 반응을 뒤로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건, 그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로 인해, 다른 이도 아닌 내게 거짓말을 하자는 것 아닌가. 어떤 방법이든 내가 결국 행복만 얻으면 되는 걸까. 긍정이 거짓이라면, 난 긍정적이지 않으련다. 나는 진실되고 싶다.



An optimist is a person who sees a green light everywhere, while a pessimist sees only the red stoplight... the truly wise person is colorblind. - Albert Schweitzer




3 명의 낙방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크게 3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게 된다.


먼저, 처지나 입장에서는 분명 놓치면 안 될 시험이었지만, 별다른 아쉬운 감정을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애초에 감정 변화가 적은 사람이거나 낙방한 것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늘에게 맡긴다는 식으로 그저 살아갈 뿐인 유형 말이다.


또 다른 경우는, 떨어진 것에 낙담하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해 온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수를 이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며 분노나 자기 비하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낙방한 것을 기뻐할 이는 없다만, 오래간 이런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이는 변할 수 없는 것에 지속적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거다. 멈춰 서 있는 것과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은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의 합격에 목표나 목적을 두고 있던 사람이라면, 더 나아감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다.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만약 오래간 이 상태를 보이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조금 비겁한 걸지도 모르겠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핑계로 계속 그 상태에 머문 채로, 개선하고자 하려는 시도나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책임을 낙방된 것에 떠넘긴 채로, 나는 떨어졌기 때문에 계속 신세한탄과 자기 비하에 빠져도 된다면서 말이다. 이는 변명을 하는 것과 같다. 변명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반성의 계기로 삼고 더 나아감을 지향할 때나 책임 유무를 떠나서 오해를 풀어야 할 소지가 있는 것을 해결하고자 할 때 정도가 아닐까.


마지막 유형으로, 낙방했다는 것에 기쁘지는 않아도 내 어디가 부족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번 시험이 그 기회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매력적이었나?


세상 모든 것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하나만 옳다고 할 수는 없을 노릇이지만, 대게 사람들은 앞서의 경우에서 마지막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낙방한 것을 인지하고 굳이 좋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자기에게 일어난 일종의 불행 속에서도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이런 상황을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치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사안을 앞에 두고서 그것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 이는 중요하나, 이보다는 결국 우리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었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게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등에 지고, 지금 혹은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현재보다는 현재-미래에 시선을 두자는 것과 같다.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삶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언가를 얻으면서 남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은 가치를 찾는 과정 속에서 따라오는 결과에 대한 평가를 논할 때 꺼내야는 것 같다.


선후관계를 명확히 하자. 처음부터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접근하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내 기분을 속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떻게든 가치를 찾기 위해 접근하면 그게 긍정을 이끌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3 명의 낙방자들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다면, 분명 마지막의 그가 가장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무언가 얻어가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긍정이나 행복은 가치를 찾으려는 것에서 파생된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지구 위에 있는 사람 수만큼이나 있다. 이에 어떻게 다다를 것인지 역시 마찬가지다. 꼭 행복해야만 하는가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행복을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한 것도 사람마다 그 정도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이라면, 오히려 '행복해야 된다'에 대한 집착을 털어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매 순간을 살아야 하며, 조금 더 욕심낸다면 많이 웃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거기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가치를 찾아내는 가치 탐색자가 되어야 한다.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Weep, and you weep alone. - Ella Wheeler Wilcox, <Solitude> 中




#행복 #긍정 #거짓말 #매력 #관점 #시선 #웃음 #미소 #과거 #현재 #미래 #가치 #탐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