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을 넘어선 관심 [2]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연인에 관하여'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이 쓰이는 이유
하루에도 자신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한 번도 본적 없던 모르는 사람들부터 어제 만난 사람들이나 가끔 만나는 사람들처럼 나를 스치는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하거나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이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다. 업무적인 사람들은 예의를 갖추어 빠른 대답과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며,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들은 편한 자세로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쉽게 물어보며 대화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불편한 사람, 기분 나쁜 사람 그리고 모르는 사람등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분류하여 기억한다. 모든 사람을 기억하는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며 그럴만한 기억력이 없다. 그래서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을 관념적으로 분류하듯이 주변의 사람들도 자신이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분류한다. 나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되는 사람만 따로 빼내어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나의 요구에 응해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나를 위해 무엇이라도 들어줄 것만 같은 친절함을 베풀지만 막상 쉽게 나의 의견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밥을 먹자는 제안에 웃으며 그러자고 말은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 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말에 만나서 무엇을 하자는 제안에 쉽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부탁이나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떠한 제안에도 동의하며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생활 패턴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요청에 무조건 응하기를 바라는 개인의 희망일 뿐이다.
사람들은 타인으로 인해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약속을 어기고 나 혼자 남겨지는 상황이나 제안을 거절당하는 일을 당하면 자신의 초라하다고 느낀다. 매사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면 금방 잊고 다시 잘 지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절에 두려워한다. 그 상처가 계속 쌓여 마음속에 자리 잡히게 되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전하는 일에 인색하게 변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지만 그들 조차도 거절에 대한 상처는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을 조용히 지워버리고 일어나서 다시 지내는 것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상처가 될 것 같기에 애초에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어제 속상한 일이 생겨서 마음이 좋지 않음을 이야기하면 무심한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잘 없을 것이다. 걱정을 하며 위로를 해주기도 하며 같이 공감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의 속상함을 웃음거리로 삼지 않고 상대의 속상함이 곧 나의 속상함과 같다는 마음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말로써 상대를 위하는 것이 진심이 아닐지언정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한다. 말을 통해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또는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동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거나 친해질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가끔 누군가가 말뿐만 아니라 더 많은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공감받고 뭉쳐있던 상처를 털어내는 것 외에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행동을 더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고급 식당을 예약했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 한다던가 주말에 놀이공원을 가자고 한다던가 아니면 평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사준다던가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분명하고 명확한 다른 친절함이다. 대화로써 간단하게 마음을 전하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 특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의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 지금은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기는 한 것이다.
내게 호의적으로 행동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특별한 사람만 나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자신의 마음이 조금은 변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쉽게 그 마음을 다시 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와 달리 조금 더 적극적이고 남다른 호의적인 행동을 한다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행동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고 앞으로 더 얼마나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 내게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성별 관계없이 누구라도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원한다.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은 사실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대상일 수 있다. 어제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서로에게 경계하거나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서로 간의 성격이 잘 맞거나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을 느끼면 서로의 마음이나 행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서로의 질문과 이야기 속에는 상대가 공감하고 호응했으면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게 된다. 어제 구매한 옷의 사이즈가 자신이 입기에 조금은 애매하다고 말한다면 상대가 공감하며 대화를 풀어갈 것이다. 이러한 것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에게 다가오는 적극성이 다름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공감을 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상대에 대한 단순 배려로 말을 받아주고 격려와 공감을 이끌어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영혼없는 대답을 느낄 때가 있다. 진짜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과 공감을 가진 것 같다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이다. 그게 여자든 남자든 관계없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된다.
서로가 자싱의 속마음을 진지하게 나누게되면 서로가 더욱 돈독해진다. 특정한 상황에서 받았던 감정이 그 상대에게도 잘 어울린다면 서로 공감하며 비슷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로가 비슷한 감정을 가지며 적어도 내 어지럽고 복잡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설령 이해한다고 말해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뜻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감은 어디에도 없고 그 사람이 생각하는 공감과 차이가 나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속 마음을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감추고 싶은 본래의 모습일 것이며 누구에게도 평가받고 싶지 않은 순수한 고민일 것이다. 그런 진지함에 상대가 진정성으로 대해 주는 것에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며 동시에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줄 만큼 그 사람에게 의지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삶에서 힘들고 외로웠던 상처를 서로 치료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상대가 자신과 다른 성별을 가졌다면 조금은 이야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상호 교류하는 정서가 맞다면 급속도로 친해지거나 너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그냥 상대가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수 있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이 받아주고 들어줄 것임을 알기에 행복해한다. 그래서 자주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자주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취미 생활도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회사의 직장 동료이거나, 학교의 친구, 동호회 멤버, 친구들 모임 등의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그러다가도 유독 이성에게 더욱 큰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본능적 행동인 듯하다. 그것이 사회적 교육이나 주변의 모습을 통해서 주입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이성에게 더 큰 마음을 쓰는 것은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이성이라고 단정 지으면 다성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을 못 느끼냐고 말할 수있겠지만 그러한 관점은 아니며 분명 보통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뭔가 더욱 애틋하고 마음이 크게 생기고 생각이 자주 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에 해당하는 사항이라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상황인 것이다. 호의의 감정이 호감으로 변하고, 호감은 다시 관심으로 변해서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관심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들이 서로 연인으로 발전하기로 서로 약속을 하고 자주 만나는 것이지 지금껏 만나서 좋은 감정이 생겼던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연인이라는 명분하에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사람들이 납득하고 인정해 주는 차이뿐인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잘 지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팔짱을 끼거나 껴안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음을 인지할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서로 공감과 외로움을 이겨내던 다른 사람과 별차이가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그들만이 조금은 더 특별한 이야기를 하거나 더 깊은 속내까지도 열어 보이며 치유할 수 있을 수 있다.
결국은 자신과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분명 그 사실이 자신에게 나타난다면 좋은 일임은 틀림이 없다. 나이가 들어 세월 속에서 많은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닭게 된다고 한다. 나를 인정해 주고 기다려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고 감정 없이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나 일 때문에 좋고 싫음 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태어나서 양육자의 품을 떠나 독립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혼을 통해서 외로움을 극복하기도 하고 연애나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는데 집중한다.
우리 모두는 사실 외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각자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나에게 신경 써주기는 힘이 든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결국 세상은 외로운 것이고 위로를 받기 위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누군가가 자꾸 신경이 쓰이고 호감이 가는 것은 어쩌면 나의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항상 기다리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