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에 가는 것도 힘들고, 홍콩의 상황으로 인해 더욱 심천에 가는 것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홍콩이 평화롭던 2019년 초의 이야기입니다.
읽기 전 : 입국 심사에서 공안에 잡혀간 이유는..?
1. 중국은 처음 가는데요.. 뭘 준비해야 하죠?
중국은커녕, 해외에 개인적으로 나가본 일이 거의 없는 나는 해외 나가는 게 늘 낯설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낯선 세계를 접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썩 반갑지 않다. 그만큼 바빠진 이유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말 필요한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라고 애써 위로를 해보았다.
일단 이 탐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송파 메이커 스페이스 이기준 대표님께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심천을 가겠노라 말은 던졌지만 관광을 가는 것이 아니고 단체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행사를 낄 수도 없다. 심천에 가 본 적도, 아는 사람도 없어서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감사하게도 대표님은 현지의 지인들을 연락해서 일정을 조율해 주셨다. 겨울방학 보충수업이 끝난 직후인 1월 18일~21일로 일정을 잡았다. 그냥 심천만 다녀오기는 아쉬우니 1박 2일인 21일~22일 동안 심천 바로 밑에 있는 홍콩에서 더 머무르는 일정을 추가했다.
망아지같이 날뛰는 7살, 5살 두 아이를 아내가 혼자서 길게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무척 미안하다. 아내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주었다.
"언제 또 가겠어? 이번 기회 아니면 못 갈 수도 있으니 홍콩 들렀다가 오세요. 그런데 좋겠..부럽...”
일단 일정은 완료. 그런데 숙소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산이 넉넉지 않다는 상황을 파악하신 이기준 대표님은 숙박비를 아끼고 그 가격으로 일정을 더 풍족하게 보내는 방법을 추천해주셨다. 비싸진 않고, 화창베이 바로 맞은편에 있으며, 아마 하루 일정을 마치면 그냥 지쳐서 쓰러져 잠자기 좋은 호텔. 편의시설 따위는 멀리 남중국해 바다에 던져버리자.(이 때문에 예상 못한 난관 두 가지를 후에 겪게 된다..;;)
대신 심천의 숙박비를 아낀 만큼 홍콩 숙소에 더 쓰자. 그래서 홍콩은 전철 역세권에 위치한 호텔을 잡기로 했다. 함께 가기로 한 최정준 선생님이 홍콩의 동선을 고려하여 성환역 근처의 호텔로 예약을 해두었다. 나도 나름 여행은 꼼꼼하게 일정을 짜는 편인데 이번 계기를 통해 정준쌤은 나보다 훨씬 꼼꼼하고 계획적이라는 걸 알았다.
그럼 숙소와 동선은 체크했으니 일단 여권부터 살펴보자.. 신혼여행 이후 해외를 언제 가봤지? 아니, 그보다 여권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집안을 뒤지며 유물 발굴을 시작했다. 어디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차라리 재발급을 받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구나.. 하는 순간에 의외의 장소에서 희한하게도 포기한 게 나타난다. 아들 장난감 찾느라 딸의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반가운 진한 초록색 여권이 나타났다. 하지만 만료된 지 이미 오래. 처음부터 재발급하는 게 여러모로 체력과 시간 모두 아꼈을 것 같다.
막상 여권 재발급받으려니 학기 말에, 보충 수업 준비에 이래저래 너무 바쁘다. 이러다간 여권 때문에 출국을 못하겠다 싶어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가장 가까이 여권 재발급이 가능한 곳을 물어봤다. 지리 선생님께서 카카오 맵을 띄우시며 종로구청이 가장 가까움을 지리적으로 설명해주셨다.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종로구청으로 갔는데 종로구청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아예 여권 발급 창구가 꽤 크게 있었다. 최근의 증명사진도 없어서 난감했었는데 구청 근처에 급한 사람들을 위한 여권용 사진 찍어주는 사진관들이 몇 군데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난 후 20분 정도 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사진이 다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여권 신청 후 3~4일 정도 지나니 구청으로부터 여권이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또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여권을 수령하러 갔는데 하필 지갑에 신분증이 없다. 어떻게 사진으로 확인이 안 되냐고 부탁을 드렸지만 신분증이 없이는 여권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가방을 뒤졌더니 옛날 여권이 튀어나왔다. (분명 피아노 의자 속에 있었는데 언제 가방 속에 들어왔지?) 그걸 신분증 삼아 새로운 여권을 받아왔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가 끝나나 싶었는데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다.
"비행기 예약은 다 되었다고 하셨죠? 비자는 발급받으셨고요?"
비..자...비자요?? 비자는 또 뭐지? 비자카드는 아니겠지? 해외여행을 거의 안 다녀서 비자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당신의 나라에 입국하는데 별 이상이 없는 사람이오..'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입국사증인 비자. 지금까지 조약에 의해 이런 비자가 면제된 나라만 다녔거나 여행사에서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걸 누리다 보니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네..
여하튼 중국에 들어갈 때는 비자가 필요한데 여행사에서 발급을 신청하던가 아니면 중국 비자 발급 센터에 가서 신청을 해야 한다. 비자 발급 센터에서 발급받는 건 꽤나 귀찮으므로 (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귀찮음이 많은 사람이란 걸 처음 느꼈다. 아니 시간 효율성을 중시한다고 바꿔 힘주어 말하겠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나 할까..?) 비자 발급 대행사를 기꺼이 이용하기로 했다.
중국 비자는 발급 대행사가 여럿 있는데 마침 종로 구청이 위치한 광화문역 근처에 "윈차이나"라는 비자 발급 센터가 있었다. 전화해서 발급 절차를 문의를 해보니 여권을 가져오면 된단다. 그리고는 국문으로 된 신청서 쓰고 결제하면 끝. 비자 공식 발급 센터보다 훨씬 빨리 나오고 편해서 차라리 이게 낫다 싶었다. 비록 대행 비용이 들긴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예약, 호텔 예약, 여권 발급, 비자 발급, 환전 등을 한 후에 짐을 꾸렸다. 그 전날까지 생활기록부를 쓰고 정신없이 지내다가 막상 출국하는 날이 되니 뭔가 묘했다. 군대에서 국방부 정기 감사 준비하다가 감사 직전 휴가 가는 느낌이랄까? 쌓여있는 일을 두고 떠나자니 뭔가 뒤가 켕기지만 잠시 치열한 삶의 터전을 벗어난다는 설렘도 찾아왔다. 궁금하기만 한 심천.. 슬슬 기대되었다. 개인 여행이라면 굳이 여행지로 심천을 갈 생각도 안 했겠지만 연수로 심천을 방문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내 돈도 아닌 학교 지원금으로..
2. 비행기를 타자. 일단 홍콩으로.
오른쪽 정준쌤이 많은 부분을 챙겨줘서 그나마 갈 수 있었다. 늘 감사 감사..
심천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인천에서 심천으로 바로 가는 직항노선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홍콩 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후 버스, 기차, 배 등으로 심천으로 들어가는 방법. 심천으로 바로 가는 노선은 비싸기도 하고 비행기가 자주 있지도 않다. 반면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는 비교적 많고, 가격도 훨씬 싼 데다가, 홍콩에 들러서 놀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홍콩을 통해 심천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항공편 예약도 정준쌤이 모두 꼼꼼하게 잘 진행해 주었다.
늘 설레게 받지만 늘 아주 맛있지는 않은, 그러나 또 먹고 싶은 게 기내식.
비행시간은 약 3시간 반. 지금(글을 처음 썼던 2020년 6월)이야 코로나 19 때문에 항공편이 거의 없지만, 코로나 19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안정적으로 보급이 되고 안정세에 접어들면 다시 3시간 반 만에 홍콩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가는 길에 기내식이 한 번 나온다. 늘 설렘에 받지만 막상 아주 맛있지는 않은.. 그러나 또 먹고 싶은 게 기내식. 홍콩 승무원의 영어를 알아듣기 좀 힘들었는데 약간의 영국식+아시아인의 영어랄까.. 내 귀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잘못이 제일 크다. 소고기 패티에 밥이 나오는 메뉴랑 오믈렛을 위주로 나오는 브런치 스타일이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각각 다른 메뉴로 먹었다. 뭐 나오는지 구경이라도 해야지.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기내식인지..
3. 홍콩에서 심천으로 가는 방법
버스를 타고 홍콩에서 심천으로 갑니다. 가깝다던데.. 점심도 심천 가서 먹자고 하시던데.. 한 2시간 반 걸렸던 거 같아요. ㅠ
중국도 처음, 홍콩도 처음이다. 아는 사람, 아는 곳이 하나도 없는 이 땅에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기준 대표님은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지인 한 분을 가이드로 소개해주셨다. 우리를 4일 동안 가이드를 해주셨던 분은 YTN 월드 리포터로 심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박준 기자님이셨다. 기자님은 홍콩 공항 픽업부터 홍콩으로 떠날 때까지 아침 호텔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셨고 로비에서 떠나셨다. 어디서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서도 늘 그렇듯 공항에서 입국 심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거렸다. 약속 시간은 꽤나 뒤로 밀려나게 되었고 기다리시는 기자님에게 죄송한 마음에 위챗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데
"원래 오래 걸려요. 마음 푸근히 가지시고 천천히 나오세요."
기다리는 분께서 오히려 우리를 달래셨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기자님을 만났다. 우릴 보시며 오히려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미안한 마음에 점심 식사를 대접해드리려고 하자
"선생님들, 기내식 드시지 않으셨어요?"
"네. 먹었죠. 그런데 기자님 배고프시잖아요."
"괜찮아요. 여기 맛있게 먹을 것 별로 없어요. 심천 가서 드시죠."
홍콩 공항에서 심천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의외로 맹그로브도 잘 보존되고 있고, 양식장도 있는 홍콩 바다.
홍콩에서 심천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배를 타고 가는 방법, 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 방법,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가장 싼 방법은 버스를 타는 방법. 가장 비싼 방법은 고속 열차를 타는 방법. 가장 멋진 풍경은 배를 타고 가는 방법.
급한 일도 없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비용도 아낄 겸 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홍콩 공항에서 버스를 올라타고 심천을 향해 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홍콩의 건물들이 모두 아득하게 높기만 하다. 땅값은 비싸고 인구는 많은데 대부분의 땅이 개발 제한지역으로 묶여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층이란다. 빨래 널릴 공간이 없어서 창밖으로 긴 건조대를 내밀어서 빨래를 말리기도 한다. 몇십층 높은 고층 아파트도 예외가 없다. 얼핏 지나가는 아파트는 대략 80층 가까이 되어 보이던데 나같이 간이 약한 사람은 맨날 다리가 후덜거려서 못 살 것 같다.
건너던 중 바다에 보니 희한하게 양식장 같은 게 보였다. 실제로 양식을 한다고 한다. 대도시 근처에서 양식이라니.. 그렇게 타고 오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심천으로 건너왔다. 분명 얼마 안 걸린다고 하셨는데 중국 기준인가 보다. 거의 서울에서 대전 오는 기분..?
공항에서 올 때는 1층 버스지만 환승할 때는 2층 버스(지금은 경기도 버스에 도입이 되었지만 당시는 국내에 2층 버스는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전이었다.)를 처음 타봤다. 버스를 환승하던 곳에 그리 크지 않은 쇼핑몰이 있었는데 심천 사람들이 여기 홍콩으로 많이 건너온단다. 왜지? 심천은 분명 서울 2배는 되는 큰 도시라고 했는데.
"기자님, 왜 심천 사람들이 여기 많이 쇼핑 와요? 심천에도 쇼핑몰이 분명 많을 텐데요."
"심천에 큰 쇼핑몰이 많죠. 그런데 여긴 홍콩 쇼핑몰이잖아요."
"무슨 차이가 있어요?"
"심천에 없는 물품들이 많아요. 중국 본토로 공식적으로 유입이 안 되는.. 아니면 심천보다 빨리 출시되거나."
아하.. 우린 아직 심천이 아닌 홍콩에 있구나.
4. 또 입국 심사?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 거 아니었나요..
심천의 입국 심사장의 전경이다. 페리를 타고 오거나 버스를 타고 오면 이곳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버스에, 공항 대기에, 비행기 탑승에, 느려 터진 홍콩 입국 심사에.. 다시공항버스에, 환승 후 버스에.. 배도 좀 고픈데 그렇게 뭘 많이 타고 다니니 힘이 들었다. 어쨌거나 심천에 다 와서 큰 다리 하나를 건너자 기자님은 내릴 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자님 말씀이,
"곧 입국 심사하니까 여권 준비하세요."
"입국이요? 홍콩에서 입국 심사 다 마쳤는데요."
"그건 홍콩 입국 심사고요, 중국에는 또 입국 심사해야 해요. 내국인이 아니면."
심 천 입국장. 난 여기서 붙잡힐뻔...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심천 입국 심사장. 여기는 버스나 훼리를 타고 온 사람들이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국심사를 받는 곳이었다. 입국하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입국 심사 게이트는 꼴랑 단 하나 열어놨다. 아놔.. 다행히 대부분 내국인이라 태그 하나만 하고 신속하게 통과를 한다. 반면 우린 중국이 처음인 외국인이니 줄을 서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어쨌거나 이제 진짜 중국 본토로 첫 발을 내딛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입국 심사하는 분이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여권이랑 내 표정을 계속 번갈아가며 유심히 쳐다본다. 뭔가 컴퓨터로 조회하고 옆 사람이랑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딘가 전화도 한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안 좋다. 그러더니 날 보고 옆에 있는 방 하나로 따라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중국에서는 공안에 납치도 되고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더니.. 순간 불안했다. 가이드인 박준 기자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볼 뿐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 공안은 무섭다. 앞서 통과한 정준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걱정되는 눈빛을 보인다. 박준 기자님도 일단은 따라가 보라는 눈치를 줄 뿐..
일단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순순히 따라 들어가니 잠깐 앉으라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What's the matter?"
라고 물어봤지만 영어를 못 알아듣는 눈치. 별수 없다. 일단 기다리자. 앉아있으니 직원은 계속 짜증 나는 얼굴로 컴퓨터로 뭔가를 조회를 하며 구시렁댄다. 좀 있다가 상급자로 보이는 관계자 한 명이 왔고 모니터를 보며 뭐라 뭐라 한다. 마치 이런 분위기였다.
"이거 왜 조회가 잘 안돼?"
"이거 새로운 여권이잖아. 그때는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잖아."
늦게 오신 분이 컴퓨터로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려주면서 이런 것도 까먹었냐는 듯 이야기를 하고 처리를 하고 간다. 그러자 나보고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통과해도 된단다. 막상 영어도 안 통하고 중국말로만 이야기를 하니 십년감수.. 아마 전산 오류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빏은 중국땅. 입국장 통과가 제일 힘들다..;;
그렇게 입국 심사장을 통과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중국의 땅을 밟은 기념으로 애써 환한 표정을 지으며 기념샷을 찍었다. (비록 배고프고 빈속에 버스 환승해가며 타고 와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