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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Aug 03. 2021

새 부대

2021.08.02.

*네덜란드 출국 D-18*


 꽤 훌륭한 하루를 보냈다. 느즈막히 일어났어도 게으름을 금방 떨쳐냈다. 계획한 것보다 더 부지런했던 하루였다. 매일이 이렇게 활기찼으면 한다.


 낡은 핸드폰을 새 것으로 바꾸고 왔다. 아이폰 12다. 네덜란드에 가고 나면 사진 찍을 일도 많고, 영상도 만들 계획이니 지금 것보다는 좋은 카메라를 가진 핸드폰을 갖고 싶었다. 내가 꽤나 옛날 사람인지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핸드폰 기기 값만 115만원이었다. 이리저리 할인을 받아도 100만원이었다. 그래도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어 무턱대고 결제를 해 버렸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달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는 마치 노예계약을 맺은 것 같긴 하지만, 별 수 없다. 이 세상이 이렇게나 비싼 이유는 이것저것 따지고 맞추고 계산하는 모든 과정을 대신 처리해주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귀찮음이 많은 나는 돈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새 핸드폰은 좋다. 무엇이든 새로움은 좋은 것 같다.


 생일 때 받았던 많은 상품권들을 드디어 거의 사용했다. 감사하게도 나를 기억해준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내게 꼭 필요할 물건들을 사 왔다. 시원한 커피도 마시고, 장도 봤다. 돌아오는 길에 부대찌개를 사 와서 집에서 먹었다. 평소보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상쾌했다.


 상반기 휴학을 했던 내가 드디어 복학을 신청했다. 한 학기만 휴학해서 큰 감흥은 없지만, 그 동안 목표한 만큼 돈을 벌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외도 하고, 글도 쓰며 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교환학생 가서 쓸 정도는 충분히 벌은 것 같다!

 복학 신청을 하니 네덜란드 생활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두근대기도 하지만, 또 별 감흥 없이 지나가지는 않을까 괜시리 두렵기도 하다. 쓸 데 없는 걱정이지만.


 내일은 밀어둔 책을 읽어야 한다. 금요일에 있을 독서 모임을 준비하며 한 권을 모조리 읽어야 하는데 한 글자도 읽지 않아 조급하다. 오늘 부지런했다는 핑계로 영어 공부도 손을 안 댔는데 내일은 기필코...!


 새 부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곤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도록. 나는 아직 새 술도 받은 것 같지 않아 여전히 헌 부대이지만 조만간 받겠지 싶은 마음에 새 부대가 되었으면 한다. 새 것이 되면 내가 달라질까. 얼마나 바뀔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아도 조금 더 큰 꿈을 지닌 사람이 되었으면. 비판과 실망이 가득하게 산 지 오래된 것 같다. 마음을 뒤집어버릴 새 부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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