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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07. 2019

그냥, 답답하고 힘들어

감정의 실을 따라가다 보면.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누군가는 비 오는 날 저녁 친구와 파전을 먹기로 한 약속에 설렐 수도 있다. 또 옷과 신발이 다 젖어가는데도 출근을 해야 해서 피곤하고 무기력할 수도 있다. 작년 장마에 친구들과 갔던 여행이 떠올라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비를 보아도 사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모두 다르다. 왜 같은 자극에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종류와 정도는 차이가 있을까? 


 그 이유는 같은 자극을 보고 떠올리는 생각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은 자극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비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이전 글에서 말은 나의 태도와 가치를 반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 자주 하는 언어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갖고 있던 경직성이나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ajrzn1153/8

이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에 내가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는지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부러움 혹은 열등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고 흐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는 매우 자동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때로는 역기능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감정을 인식하고 이름 붙이며, 격앙된 감정을 조금이나마 표출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감정은 뒤엉켜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끝을 따라가서,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사고가 무엇인지 인식한다면 어떨까? 


가령, 늦잠을 자는 바람에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1시간 늦었다고 가정해보자. 친구에게 충분히 사과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들고 왠지 모를 불안이 올라오는 듯하다. 친구가 이제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늘 실수를 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도 든다. 

이때 '친구가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늘 실수를 하는 나'라는 생각은 각각 불안과 죄책감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수를 한 번 했다고 해서 좋아하는 친구가 바로 싫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이 늘 실수를 한다고 하지만, 실수를 하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그렇기에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한 부분을 과대하게 해석하여 일반화하고 있다. 


이렇듯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사고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따라서 감정을 따라가 이러한 사고를 인식하고, 이것을 다른 생각으로 대체한다면 부정적인 정서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친구와의 약속에 지각한 것 때문에 내가 늘 실수만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면, 약속을 지켰던 상황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늘 실수만 하는 것은 아니네', '좋은 친구고, 충분히 사과했으니 이번 실수는 용서해주었을 거야.'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의 실수를 과대하게 해석하고 일반화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는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실수를 과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지. 생각해보면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내가 상담을 받을 때, 상담 선생님께서는 이런 인지적 흐름을 생각만으로 따라가기 어렵다면 종이에 적어보기를 추천해주셨다. 그때의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고, '왜'라는 물음을 덧붙이며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오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괜스레 눈물이 나고, 마음이 불편했다. → 친구가 너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런데 내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고, 역시 나는 무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친구가 힘들 때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무력한 사람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이렇듯 그냥 답답하고 괜히 눈물이 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냥'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일에서는 하나의 감정만이 드는 것이 아니며, 그 일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큰 감정일수록 엉켜있는 실뭉치처럼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엉킨 실뭉치를 다치지 않게 풀어나가려면 그 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왜'라는 물음에 차근차근 답하다 보면 어느새 그 답답함의 근원인 인지적 오류와 마주하게 된다. 


그냥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힘이 드는 하루라면, 오늘 나를 힘들게 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왜 그것이 힘들었는지 찬찬히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연습해보는 것이다. 하다못해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하다거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신체적인 이유라도 있을 것이다. 실 끝을 따라가 근원이 되는 사고를 인식하고 대안적인 생각을 연습해두자. 그렇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복잡한 미로라도 처음 가는 길과 답이 그려진 길을 가는 것이 다르듯이.



[Reference]

이지영 (2016). 정서 조절 코칭북.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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