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기능적 귀인 -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흘려 보내기
살아가다 보면 마냥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는다. 때로는 나를 너무 힘들고 괴롭게 하는 일들도 있다. 그런 일을 마주했을 때, '혹시 나쁜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난 걸까' 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불행을 부르는 것 같고, 나에게는 늘 나쁜 일만 생기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탓이 아닌데 말이다.
특히 평소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령, 친구의 부탁을 거절했고 그 친구와 갈등이 생겼다면? 분명 무리한 부탁이었고, 거절하는 것이 맞는 일인데도 그 일에서 내 잘못을 찾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렇게 외부에서 발생한 일의 원인을 해석하는 인지과정을 '귀인(attribution)'이라 한다. 귀인은 그 소재(내부/외부), 안정성(안정적/불안정적) 통제 가능성(통제 가능/불가능)의 세 차원에 따라 나뉜다(Weiner, 1986). 연구자에 따라 통제 가능성을 대신하여 전반성(전반적/구체적)을 하나의 차원으로 보기도 한다.
소재 차원은 사건의 원인이 개인 내부에 의한 것인지, 그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나뉜다. 안정적 귀인은 시간과 상황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통제 가능성은 그 일의 원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귀인 양식은 보통 좋은 일은 내 탓으로, 나쁜 일은 남 탓으로 돌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조별 과제에서 똑같은 정도의 작업을 했다고 하자. 이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면, 나의 노력이나 성취를 크게 평가할 것이다. 반면 나쁜 결과를 얻었을 때는 타인의 영향을 더 크게 평가한다. 이는 자존감 혹은 자기 효능감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귀인 양식의 다양한 양상은 여러 심리적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귀인 양식은 역기능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내부 귀인을 전반적, 안정적으로 할수록 우울성향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다. 즉 부정적인 사건은 나에게 늘 일어나는 일이고, 한 사건이 아니라 나에게 전반적으로 일어나며, 더욱이 그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안타깝게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을 자기 비난적으로 내부 귀인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외상 후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하다. '혹시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옷을 짧게 입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하지만 명백하게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고무적인 점은 이러한 귀인 양식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쁜 일은 이미 일어났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 동료 선생님과 이야기하던 중 마음을 울렸던 말이 있다.
"다들 돌아보면 우리 때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이것이 두고두고 상처로 남아서 떠올릴 때마다 괴롭다고 하기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지금이 많이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아프지 않도록 그때마다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려고요. 그것이 계속해서 쌓이지 않도록이요."
항상 좋은 일만 있지 않듯, 나쁜 일만 있지도 않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들의 많은 부분은 내 탓이 아니다. 또 어떤 부분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쌓아두다 보면 언젠가는 곪아버릴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일들이 내게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할 수 있다!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혹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나에게는 늘 나쁜 일만 일어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은 힘든 상황이 닥친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어렵다면, 의식적으로라도 '내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이것도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보자. 계속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려는 손을 잠깐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돌보고 안아주자. 일단 소리내어 말하면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지나간다. 지금 많이 지치고 힘들더라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는 당신을 응원한다.
Reference
Weiner, B. (1986). Attribution, emotion, and a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