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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10. 2019

나의 기대, 너의 반응

나와 너의 과제를 분리하기.

다리를 삐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 전 한 번 다친 다리는 그 이후로 연례행사처럼 다치고 만다. 깁스를 하는 것도 익숙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크게 없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통학 시간이 길어졌다는 점이다. 다리를 다치고 병원에 가기 전부터 혼자 고민했던 것이 있는데, 지하철에타서 어디에 서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 서 있으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는 않을까?'

'그 사람들도 피곤할 텐데 내가 앞에 서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지는 않을까?'


친구들은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냐며 놀랐다.


"너무 과한 배려 아니야? 너도 평소에 다친 사람이 있으면 양보했으니, 좀 양보받으면 어때서?"


그렇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과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행동을 제한적으로 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나의 고민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어려워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 가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직원이 나를 '진상 손님'으로 볼까 봐 주문이 들어갔는지 확인하지 못한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는 나를 배려 잘하는 착하고 세심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르겠고, 누군가는 소심하고 답답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미움받기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 문제로 상담을 받을 때였다.


"내담자님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문제 제기를 하면, 상담원이 뭐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우세요?"

"저를 쓸데없는 일로 불평하는 사람이나 진상이라고 볼까 봐 두려워요."

"만약 그렇게 본다고 생각하면 어떤 점이 걱정되나요?"

"저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뒤에서 욕할 것 같아요."

"뒤에서 욕하는 것은 내담자님이 알 수 없을 텐데, 그런데도 두려운가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걱정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하철에서 서는 곳 까지도 신경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받은 상담,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내가 미움받기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통찰을 주었다.




미움받는 것이 제일 두려운 나에게는 이 책의 제목부터가 인상적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나의 기대는 내 몫이고, 행동에 따른 반응은 상대의 몫이라는 말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의 기대는 상대의 몫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내 몫이다. 즉, 미움을 받을 용기라는 말은 상대의 기대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지하철에서 다친 다리로 누군가의 앞에 선다고 해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잘못한 부분에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합리적인 문제제기로 여길지 혹은 진상으로 여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끼듯이 말이다.


그래서 상대가 해야 할 과제와 내가 해야 할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변화를 기대하며 의견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나의 과제는 이야기하는 것까지이다. 그 이후는 어쩔 수 없다. 상대가 변화할지 말지는 상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변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행동에 대해 무수히 많은 평가적 피드백을 들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피드백이 곧 나에 대한 피드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착한 행동을 한 나는 착한 사람, 나쁜 행동을 하는 너는 나쁜 사람. 그리고 내가 한 번 나쁜 행동을 한다면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상대의 몫이다. 나의 행동이 변한다면 그 변화를 반기는 사람과 꺼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듯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데는 큰 이유가 없더라. 그렇다면 누군가에게는 미움받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건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과제 까지만 노력하자. 나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니.'


[Reference]

전경아(역) (2014).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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