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홀로 보내기
“여자는 시집 가면 출가외인이야. 어차피 차례랑 제사는 아들이 물려받아야지.”
아빠에게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10년쯤 된 것 같다. 외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았을 때부터였을까. 그때는 출가외인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딸인 나는 이 족보에 속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이 집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전까지 명절 음식은 할머니와 엄마와 내가 도맡아 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는 집안 행사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어차피 나는 시집 가면 남이라는 데 뭐. 특히 성인이 되고 서울에 온 이후로는 명절에 내려간 적이 손에 꼽는다. 물론 가지 않아도 딱히 찾지 않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한 번 내려올 때가 되지 않았나 부모님이 눈치를 줄 때쯤이 내려가는 타이밍이다.
“선생님, 명절에 고향 내려가세요?”
“아니요. 전 2년에 한 번만 가요. 설에 다녀왔으니 2020년에 내려가겠네요!”
“오, 너무 부러워요. 또 잔소리 들을 생각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요.”
뭘까. 추석은 TV 프로그램에서 ‘민족 대명절’이라고 이야기하던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휴일이지만 쉼은 없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쨌든 나는 나만의 의미로 해석한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늘어지도록 낮잠을 자는 자기 돌봄의 시간.
다리를 삐어서 오래 걷기는 힘들지만, 모처럼 좋은 날씨가 아까워 한강공원을 찾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 한 권, 테이크 아웃한 사이즈업 아메리카노, 새로 산 돗자리, 좋아하는 노래, 사람이 없고 한적한 장소까지. 이것이 진짜 휴일이고 명절이구나 싶다. 그야말로 ‘쉬는 날’!
물론 북적북적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조금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암묵적으로 강제되지 않게.
집에 내려가서 하루 종일 전을 부쳐야 할 때는 하루 종일 맡은 기름 냄새 때문에 입맛도 없더라. 혼자 있으니 바삭한 전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오늘 저녁에는 나를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대접해야지.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온다. 행복한 명절 보내라고. ‘풍성한 한가위’ 같은 말보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행복한 한가위’라니.
그래, 내가 행복한 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