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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Dec 04. 2020

슬기로운 휴학 생활 16화

맑고, 깨끗하고, 자신 있게

내 글을 읽어왔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현재 공공기관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출근 중이다.


휴학 생활이라는 타이틀로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꼭 하고 싶다고 했던 활동이 '인턴'이었는데

정말 운 좋게 복학을 앞 5개월  채용되었다.


5개월의 짧은 기간이기도 하고,

인턴직들이 하지 않았던 특수한 분야라 인턴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통용해서 인턴이라고 하겠다.


인턴 생활을 한지 어느새 두 달에 접어들었다.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본가에서 통학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 빼고는 매우 만족 중이다. 다만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배어 주말에도 눈이 번뜩 뜨인다.


내가 주로 하는 업무는 교수님들을 만나 뵙거나 학생들을 만나거나 가끔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도와주고 해결을 해야 하는 업무라 의사소통 능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한 업무인 것 같다.


다행히 나는 그동안 여러 활동들을 통해 누군가의 말을

해석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법과 때에 따른 상황 대처 능력에 익숙해진 터라 쉽게 당황했던 적은 없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다른 부서에서 도움을 요청해 우리 부서에서 그 부서일을 하게 됐다.

300개 가까이 되는 엑셀 파일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는데,

의사소통 오류로 인해 방식이 다르다며 100개 가까이 끝낸 문서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상사를 통해 요청한 것도 아닌 그 부서로 데려간 우리 쪽 선생님을 통해 업무 지시를 내린 것 (심지어 그 선생님도 이제 막 일을 배운 상태였다.), 어떠한 매뉴얼도 없이 대충 알려준 상태로 무작정 일을 시킨 것,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이 아닌 너무 당연하게 업무를 시킨 것이었다.

90년대생은 참지 않지.라는 말이 있듯 난 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순응할 수 없었고 당당히 내 의견을 전달했다.

(90년대생은 참지 않는다는 게 조롱의 의미로도 쓰이곤 하지만 불의의 순간에는 내 의견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쪽 부서 선생님께서는 사과를 하셨고, 우린 그 일을 하지 않게 됐다.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닌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건 시간도 노동의 가치도 사라진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의사소통의 중요함을 배웠다.


케바케(case by case)라고 사람마다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 어떤 교수님은 꼼꼼한 체크를 좋아하시고, 어떤 교수님은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드리는 걸 좋아하시고, 어떤 교수님은 여러 번 얘길 해 드려야 알아들으시는 교수님이 계다. 학생들은 보통 다 착해서 케바케보다는 학생 = 친절하다 이게 머릿속에 각인이 된 거 같다.


그래서 작은 스트레스들은 보통 교수님들 때문에 발생한다.

학생들이 왜 이 교수님을 안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도 교수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드리고 나서는 오히려 이런 교수님들에게서 오는 뿌듯함이 더 크다.


작은 스트레스들은 바로바로 해소하려는 편이다.

출퇴근할 때 듣는 노래, 점심 메뉴는 뭘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 퇴근길에 가벼운 산책 등이 내 하루의 힐링이다.

이어폰이 없다면 삶의 질이 떨어질 정도로 음악은 사람을 up 시켜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론 힙합이나 아이돌 노래가 최고다.)


어쨌든 복학을 앞둔 남은 개월 동안 인턴 비슷한 것을 한 것에 만족스럽지만 난 역시 욕심이 많은 터라 기회가 된다면 회사 인턴직에도 출근을 해보고 싶다.

아마 그때 가면 이때가 정말 그리울 것 같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건데

다행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이런 것으로는 오히려 힐링이 된다. 계약이 끝나고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하는 사람들이고 앞으로 내가 다닐 직장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졸업생이신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나는 아직 4학년을 앞둔 휴학생이다. 즉 막내다. 그래도 절대 나를 만만하게 여긴다거나 일을 떠넘기지 않으신다. 나이를 알게 돼도 동등하게 대하는 게 당연하면서도 감사하다.

보통 업무가 없을 때에는 각자 취업 준비를 하시는데 다들 같은 마음이라 그런지 함께 있으면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열정도 생겼다.


최근 퇴사하신 행정원 선생님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

습득력이 빠르고 이해력이 제일 좋은 거 같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인정받기 좋아하는 entj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새해 첫날 들었던 노래가 한 해의 예고편이다 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들었던 노래가 옥상달빛의 인턴이었다. 가사가 좋아 아침에 들어보길 추천한다.

인턴 / 옥상달빛

불안해하지마
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사실 불안해
걱정하지마
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사실 걱정이 산더미야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맞는지
어차피 우리는 모르지
멈추지 않고 가보면 알겠지
비록 난 조금씩 나이만 들어가지만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난 누구보다 소중하니까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매일매일 행복하자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오늘도

이제 세 달 남았지만 이 세 달도 후딱 지나갈 것 같다.

세 달이 끝나자마자 복학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실감은 안 나지만 그때까지 내가 해볼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보고 싶다.

아쉬움은 남되, 후회는 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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