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맺어준 인연
2019년 모든 수사 업무를 중단하고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에 뛰어들었다.
그해는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었다. 형사가 되고 나서 찾아온 3번째 고통이었다. 살아남은 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고 간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고 누워서 그날을 떠올려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차마 유가족에게 이름을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예뻤던 목숨을 지키고 살면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거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도 있었을 건데 대포통장 하나에 더 이상 꿈을 가질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다.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고 방에만 누워 있었다. 모든 게 내 책임인 것 만 같아 한꺼번에 밀려오는 고통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동안 사이버범죄로 만났던 사람들은 많은 메시지를 남겨두고 떠났다. 그래서 담당자만 알고 있는 이 메시지를 알려 줘야 했다. 그것만이 살아남은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예방교육 업무를 시작했다. 형사가 수사 업무를 중단하는 순간 진급을 포기하고 승진과 인사고과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부서로 밀려나는 걸 감내해야 했지만 절실했다. 그래도 확연히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예방교육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라도 사이버범죄 통계에 포함되지만 않는다면 인생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예방교육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예방교육을 시작하면서 찾아온 첫 번째 어려움은 '두려움'이었다. 남들 앞에서 말을 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강의 경험도 없다 보니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였다. 그래서 같은 동료들 앞에 나가서 먼저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느껴보자 였다. 청중이 경찰관이 되면 주변 환경은 모두 최악이 된다. 반응도 없을 뿐 아니라 근거 없는 자료를 제시했다간 현장에서 면박을 당하고 무엇보다 칭찬과 격려는 기대하면 안 된다. 그래도 가야 할 목표가 있었기에 동료강사를 지원해 꽤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척박한 무대에서 두들겨 맞았던 경험은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2019년도는 학교와 군부대 그리고 교육이 필요한 곳이 있겠다 싶으면 공문을 보내고 찾아다니면서 124회 21,000여 명을 대상으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코로나가 터지면서 대면 교육이 줄어들어 60회 8천여 명과 만나 예방교육을 할 수 있었다. 2021년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 교육까지 병행했지만 54회 4,000명을 대상으로 교육하는데 그쳤다. 코로나가 판데믹으로 전환되면서 교육방식에도 변화가 오면서 비대면 방식으로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교육을 했고 사람들로부터 입소문을 타면서 유튜브와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할 기회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증가하는 사이버범죄는 억누를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혼자서 3년간 238회 33,000명을 찾아다니면서 교육을 했건만 사이버범죄는 해가 갈수록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예방교육으로 사이버범죄 감소 효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예방교육인지 뭔지 하면 뭐합니까? 어차피 당할 사람은 당할 건데...."
동료들의 걱정 섞인 조언과 냉소적인 충고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예방교육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만큼 관심이 있기 때문에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하루하루를 가장 열심히 살면서 이런 교육 자체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는 분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는가였다.
2018년 149,604건이었던 사이버범죄는 2019년 180,499건 그리고 2020년에는 234,098건으로 가파른 상승 치를 보였고 2021년도는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전국의 사이버범죄 수사관들이 폭증하는 사건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한 명의 수사관이 아쉬운 상황에서 예방교육을 계속할 원동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만두기가 너무 억울했다.
사이버범죄는 피해를 당하는 순간 가로챈 돈을 게임 아이템으로 환전해 버리고 대포통장으로 수차례 세탁하면서 회수가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특히 방학 때만 되면 게임 캐릭터에 집착하는 청소년들 대상으로 채팅창에 접근해 한정 이벤트를 가장해 개인정보를 가로채는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SNS에 집착하는 여학생들에게 접근해 고가의 명품을 주겠다고 접근한 뒤 SNS 계정 아이디와 비번을 알아내 돌려받기 위해서는 나체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도록 해 성착취 물을 제작하는 신고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이버범죄는 피해 전과 후의 삶의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예방교육이 필요했지만 혼자서 감당해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글'을 써보자 였다. 하지만 사실적 근거만을 담아내야만 했던 '수사보고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는 상태에서 호소력 있는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혹여나 수사 기법이 노출되는 게 아닌가 자기 검열에 빠져 글을 썼다 지웠다 업로드했다가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한편을 올리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하지만 그동안 예방교육을 통해서 만난 분들은 경찰의 추적 수사 기법보다는 효과적인 예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사건에서 범죄자를 추적하는 수사 기법은 형사들만의 시그니처라면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예방법은 충분히 돌려줘도 될 자산이 될 것 같았다. 전국의 사이버범죄 수사관들은 이런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가지고 있지만 오늘도 밀려드는 사건 앞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어 나 혼자라도 나서서 알려 줘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브런치는 꽤 효과적인 플랫폼이었다. 마음먹은 만큼 많은 글을 올릴 수는 없었지만 자기 검열은 최대한 멀리 두고 수사 보고서의 내용 그 자체가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가졌던 생각을 떠올리면서 한 편 한 편 글을 만들어갔다. 사실 수사보고서는 공문서이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나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사건을 통해 얻은 스토리텔링은 나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료들을 찾아가며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글을 보고 전혀 색다른 업무 영역을 가진 직업군들과 연결이 되면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연재한 지 만 1년째 되는 해 한 출판사 기획팀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그날은 역시 브런치를 보고 연락 온 한 지역 라디오 방송사로부터 '사이버범죄예방 특집' 녹화가 잡혀 있어 출장 가는 중이었다. 제안 메일에는 '사이버범죄 수사에 관한 인문서'라는 구절이 잡아끌었다. 인문서의 정의에 대해 정확히 몰랐지만 분명 수사 보고서를 쓸 때의 감정을 쓴 글이 출판사의 방향과 맞았기 때문에 연락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담겨 있는 글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최대한 정제하고 걸러낸 글에서 어떻게 나의 의도가 보였는지 역시 출판사는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는 전화 통화를 마치고 1달 뒤 미팅을 하고 그리고 얼마 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던 사이버범죄라는 주제를 선택해준 출판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컸고 무엇보다 미팅을 할수록 수사보고서 밖에 모르는 나를 알아봐 준 기획팀이 고마워 사인은 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껏 썼던 글의 양보다 훨씬 많아져야 했고 그리고 마음 속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