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나 Mar 09. 2024

엄마 없이 혼자 나서는 골목길

언제쯤 엄마 없이 혼자 길을 나섰는지 기억나니?

내가 기억나는 오래전이라면 유치원 때 혼자 집에 걸어오던 기억이 나. 어쩌면 1학년이었을지도 모르겠어.

학교인지 유치원인지 끝나면 혼자 큰길도 건너고 횡단보도도 건너고 골목길을 돌아 집까지 한참 걸었던 것 같아. 누군가 길을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준 건지 생각나진 않지만 기억나는 한 나는 그 길을 늘 혼자 걸었어. 특별히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 늘 정해진 그 길로만 걸었어. 몸만큼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말이야.


우리 집은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있는 집이었어. 아파트를 건너 골목길로 접어들었지. 그때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발견했어. 덩치가 나만한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왈왈 짖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 어디 묶여있는 것도 아닌데 누구를 보고 짖는 건지 모르겠어.  어깨에 맨 가방끈을 더욱 세게 잡아당겼어.

얼마 전에 오빠가 큰 개한테 허벅지를 물렸거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것 같은데 오빠의 장난치는 모습에 개가 화가 났나 봐. 오빠의 상처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언제나 날 지켜주던 오빠가 우는 모습에 더 겁이 났어.

개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뒤로 살살 뒷걸음치며 다른 골목길로 집에 가야 했어. 지금은 지켜줄 오빠도 없으니까.

한참을 돌아 집을 향해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또 커다란 개를 만났지 뭐야. 커다란 개가 다 거기서 거기처럼 생긴 것 같아 아까 그 개인지 아님 다른 개인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그냥 다시 뒤로 돌았어. 온 길을 되돌아갔지. 하지만 소용없었어. 다른 골목길에서  커다란 개를 만나고 말았거든.


나는 그날 한참을 그 골목길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집에 늦게 갔어.

하지만 다음날도 난 그 골목길을 혼자 걸었어. 다행히 그 뒤로 커다란 개는 만나지 않았던 것 같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래?

2학년 때는 전학을 갔어. 이번엔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로 이사 간 거야.

난 2학년 2반이 되었어.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참 친절하셨어. 학교 끝나고 혼자 집에 갈 수 있는지도 물어봐주셨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집에 가는 방법을 몰라. 어제 이사 왔거든. 나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 이름을 선생님께 알려드렸어. 초등학교에서 그 아파트까지는 학교 담장을 따라 쭉 돌아가다가 큰길을 건너고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어. 그땐 몰랐지. 아무도 나에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담임선생님은 친구 한 명을 나에게 붙여주셨어.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대신 부탁도 해줬어. 그 친구는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나는 집에 가려면 그 친구와 꼭 붙어 따라가야 했어.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큰일이잖아. 그런데 그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한다는 거야. 아까 선생님 앞에서는 데려다주겠다 약속해 두고는 이제 와서 나보고 혼자 집에 갈 수 있냐고 물었어. 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했지. 그럼 할 수 없이 피아노 학원을 따라오래.


난 전학 간 첫날, 처음 만난 친구와 피아노 학원까지 따라가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겨우 집으로 갈 수 있었어. 엄마는 내가 집에 온 것을 보고 별 말이 없었어.


예전에 집에 오는 길에 나 혼자 커다란 개를 만났을 때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