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wAnG Feb 13. 2023

디자인 시안과 군만두

군만두라 쓰고 서비스라 읽는다

.늘만 .충 .습하고 사는 남자. 오대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퇴근길에 세상에서 사라진다.  눈을 떠 보니  에르메스풍의 벽지가 발린  낯선 방. 이곳은 유선방송이라도  달았는지  다채널 TV도  틀어주고,  헤어스타일도  유행 따라 다양하게(취향과는 무관) 케어해 주는가 하면  죽을 만큼(?) 아파도 정성껏  치료해서 다시 살려내는 아주 친절한 사설 감옥이지만 먹는 거라곤  오직  군만두... 군만두뿐이다. 언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 체 그렇게 15년간 군만두만 먹으며 갇혀 지낸 남자의 이야기...... 올드보이이다.


  군만두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에게 아주 중요한 식량이자 희망이고, 단서이다.

15년간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배식되던 지방과 탄수화물, 단백질이 적절한 유일한 영양소였고, 탈출을 위한 빛줄기였다. 매일 배식되던 군만두와 우연히 젓가락이 3개가 들어오자 젓가락 하나를 숨긴 오대수는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이 작은 손망치로 그러했던 것처럼 그 젓가락으로 감옥벽을 조금씩 갉아내며 탈출의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 희망을 철저히 비웃으며 스스로 탈출하기 바로 직전에 오대수를 풀어준다.  

그렇게 풀어진(?) 오대수는 이우진과 추적게임을 하던 도중 감금시절 만두속에서 나온 중국집 젓가락 포장지 쪼가리에 적힌 '청룡'을 떠올리고 이를 단서로 사설 감옥을 추적한다.  15년간 먹어왔던 혀에 새겨진  군만두의 맛을 전국의 '청룡'이란 이름의 중국집을 뒤져가며 추적하던 오대수는 마침내 그 군만두를 '자청룡'이란 식당에서 찾아내게 되고, 사설감옥의 위치도 알아내게 된다. 그 이후 자신을 그곳에 가둔 이우진과도 마주치게 되고, 둘은 혀에서 시작돼서 혀로 끝나는 찐득한 싸움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사설 감옥 깡패들이 군만두를 준 이유가 당연히 자기들 밥 시키고 서비스로 온 군만두를 줬겠거니 생각했는데, 뒷부분에 나오는 장면에서 보면 배달통에서 군만두를 꺼내서 사설감옥의 개구멍으로 친절하게 하나하나 배식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또 사설감옥의 위치를 알아낸 오대수가 중국집 배달원에게 "주방에 얘기해라. 군만두에 부추 좀 웬만큼 넣으라고"하는 거로 봐선 직접 만든 만두를 썼던 모양이다.

ⓒ  - 영화 '올드보이' -

보통 중국집 군만두는 크게 두 종류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납품받아서 제공되는 군만두와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서 파는 메뉴의 하나로서의 군만두 이렇게 두 가지이다.

일반적으로 군만두 중 삼각형 모양의 동전지갑 같이 생긴 만두와 질깃한 식감에 즉석 떡볶이에 들어있을 법한 납작한 허여멀건한 군만두가 납품 서비스 만두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요리를 시키거나 식사를 많이 시키면 중국요리집에서 많이 시킨 답례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군만두를 주기 시작했고, 또 어느샌가부터 웬만큼 중국음식을 시키면서 "군만두 서비스 좀 주세요~~"라고 얘길 하면 군만두를 가져다주셨다. 그렇게 군만두의 슬픈 운명이 정해진 것 같다. 요즘은 군만두 서비스 달라고 말 안 해도 잘 주고, 안 주면 섭섭해하는 상황까지 도래했다. 부당거래의 류승범이 그렇게 얘기하던 '호의가 권리가 된 것'이다. 

만두라는 음식이 보기보다 손도 많이 가고 재료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인지라  중국집 사장님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대량 생산 군만두를 납품받아 자장면 두세 그릇만 시켜도 끼워 넣어 주기 시작하셨고, 마침내 그렇게 군만두는 서비스계의 대명사가 된다.

둘리보다 호의를 많이 외치신 분, 스틸사진만 봐도 대사가 들리는 듯하다.   ⓒ  - 영화 '부당거래' -

냉장고를 부탁해, 현지에서 먹힐까 등에 출연하고 있는 이연복 셰프와 군만두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연복 셰프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첫 식당을 개업했을 당시 사람들이 요리와 군만두를 시키고 계산할 때 만두값을 계산하면 만두는 '서비스 아니었냐', '무슨 군만두값을 다 받느냐'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미 군만두라는 메뉴는 서비스의 이미지가 강해진 탓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만두는 손도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음식으로서 그 대접을 못 받는 것 같다고 판단한 이연복 셰프는 군만두를 메뉴에서 아예 빼버렸다고 한다.(후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지고 군만두를 먹고 싶다는 손님들이 늘어나 다시 판매를 했다가 수요가 너무 많아져 만들기 힘들어 다시 판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미팅을 하다가 견적과 시안에 관한 이야길 하다 보면 대게의 분들은 그럼 시안이나 견적은 언제 받아볼 수 있느냐 말씀하시고, 우리 회사는 견적과 시안이 계약 후에 제공되기 때문에 계약 전에는 그러한 것들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분들이 많이 의아해하신다. ‘무슨 무슨 회사는 견적이랑 시안 다 주는데, 내가 인테리어 몇 번째인데 이런 경우는 첨 본다. ‘ 등의 반응이 일반적이다.

견적이란 것은 디자인에 준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그에 따른 견적이 산출되어 꾸려지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디자인이 없이 견적이 있을 수 없고, 때문에 견적이 디자인보다 먼저 산출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짜로 시안을 주는 곳, 견적을 주는 곳은 뭐냐고 물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중국집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인테리어 업계 역시 우리 회사와 계약하니까 견적과 시안을 무료로 제공했고, 클라이언트와 좀 더 쉬운 계약을 위해 호의로 무료 시안과 견적을 제공했는데 그게 계속되다 보니 지금의 둘리가 된 것이다.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무료 견적과 시안을 필요로 하였고, 그에 따라 인테리어 회사들도 그에 맞는 납품 만두가 필요해진 셈이었다.

그 납품 만두들은 클라이언트의 공간에 맞게 설계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이전에 해놓은 작업에서 마감재 바꾸기 위주의 작업으로 견적과 함께 제출될 텐데, 이러한 디자인들은 정당한 설계비와 계약을 통해 일정기간 오롯이 그 클라이언트만의 공간을 위해 시간을 들인 디자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스포크라 불리는 맞춤 제작 옷과 기성품 옷과의 차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전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실내디자이너는 단지 베란다 확장만 해주고 마루만 교체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공간을 나에게 맞게, 사용하는 용도에 맞도록 재단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딱 떨어지는 공간이라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지금이 순간에도 당신에게도 보여주었던 견적과 시안과 마찬가지로 다른 문의 전화에 공짜시안과 공짜견적이 나가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당신의 의뢰에 집중해서 그 시간을 전적으로 당신의 공간에 투자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어느 곳이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너희는 왜 군만두 주지 않느냐'라고 '서비스'를 강요할 일은 아닌 것이다. 서비스 만두는 서비스 만두일 뿐 맛있는 양질의 군만두를 먹고 싶다면 당당히 메뉴에 쓰여있는 군만두를 주문하라. 질깃하고 기름천지인 군만두가 아닌 바삭하고 육즙이 가득한 군만두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짜시안과 견적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소위 ‘인테리어 업체의 횡포’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으로, 바로 추가금에 관한 사례인데, 인테리어 공사 중 처음과 이야기했던 금액과 다르게 추가금액이 계속 늘어나는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마루를 바꾸려 했더니 추가금이 든다', '타일을 바꾸려 했더니 추가금이 든다. ‘ 이러한 것들은 앞서 얘기했듯이, 견적은 디자인에 준해서 클라이언트와 나는 이런 마감을 하고 싶고 이런 구조가 되고 싶고, 이런 감촉의 마감이 좋고, 이러한 세세한 디자인에 관한 세부내용들이 협의가 된 후에 내야 하는데, 그냥 디자이너가 시안과 견적을 내기 위해 임의로 정한 마감이기 때문에 그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면 타일 하나라도 추가금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클라이언트의 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마감과 디자인을 결정하고 그 시안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견적을 산출하는 업체를 만난다면 해당시안에 포함된 모든 자재와 공종들을 바탕으로 산출한 금액을 제시하기 때문에 추가금이 생길 이유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다 '서비스'에 기인하여 생겨난 것들인데 정확한 디자인 비용의 지불과 그렇게 나온 디자인, 그리고 그에 기반한 투명한 견적은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과 더불어 합리적인 비용으로 공사를 할 수 있으며, 디자이너에게는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시간적 여유와 그에 따른 금전적인 치료가 병행될 수 있기에 합당한 디자인 비용의 지불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았으며 하며, 당연히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군만두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군만두 돈 주고 시키길 잘했네'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두값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이너와 포드 V 페라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