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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n 17. 2024

소시지빵을 먹다가

맛있는 것부터 vs 맛없는 것부터

이재용 회계사가 나오는 유튜브를 종종 본다. 정작 회계와 경영 이야기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빵은 소시지빵'이라고 강력 주장하던 모습만 뇌리에 콕 박혀 있었다. 나는 한국식 조리빵은 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름 빵 근본주의자라서 흉물스럽게 쳐다보기만 하고 지나치던 빵인데, 도대체 어떤 면이 저렇게 좋은 걸까 궁금해서 한번 먹어볼까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마침 산책을 나갔다가 들른 동네 개인 빵집에 팔뚝만 한 소시지빵이 있었다. 토마토와 할라피뇨가 함께 들어가서 '빵맥'에 최적이라는 문구와 함께 신상품이라 할인도 해준다기에 냉큼 집어왔다.


가위로 썰어 놓고 보니 소시지와 야채가 잔뜩 들어있는 부분과 빵만 있는 꼬다리로 나뉘었다. 당신은 맛있는 부분부터 먹는 사람인가, 맛없는 부분부터 먹는 사람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알 테니 생략하자. 나는 가장 맛없는 것부터 먹는 사람이다. 이 참에 삶의 방식을 바꾸어볼까 싶어서 토핑이 가장 푸짐한 부분부터 집어먹기 시작했다.


싹싹 종이에 눌어붙은 것까지 다 긁어먹고 나서 의문이 생긴다. 맛있는 것부터 먹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는 뒤끝이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게 먹었어도 마지막이 - 너무 달거나 쓰거나 텁텁하거나 느끼하거나 - 별로면 나쁜 여운이 오래간다. 이 '뒷맛'이라는 것이 전달되는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은 절정과 마지막 순간을 기반으로 경험의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는 peak-end rule이 있지 않은가. 마지막 인상이 평생 간다고 하니, 역시 가장 맛있는 것은 가장 마지막을 위해 아껴두는 것이 옳다. 가장 맛있는 것을 제외한 상태에서 맛있는 순서로 먹다가 마지막을 최상의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만족을 높이는 최적의 전략이 아닐지.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중간에 배가 불러 중단하는 예외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배가 부르면 무리하지 말고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끝내야 한다. 마지막 먹은 것이 너무 맛있다고 욕심을 부려 더 먹으면 최악의 선택이 된다. 끝내야 할 때를 알고 멈추는 것,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정작 소시지빵을 먹는 것만도 이렇게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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