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개화식물의 수분에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배웠으나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식물이 있는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몇 마리 벌에 번식을 의지한다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고, 뛰어노는 것보다는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 하는 분위기였으니 실제로 벌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주위를 둘러싼 녹음이 연속된 무한한 면이라면 벌의 존재는 드문 드문 떨어진 점일 뿐이니. 업계용어로 feaisble하지도, scalable 하지도 않아 보였다. 대체 도시에 벌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오늘 아침,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데 붉은색 꽃나무의 꽃에 벌 한 마리가 앉았다 멀어졌다 하며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꽤 큰 벌이었다. 정말이네. 지구에는 벌이 살고 있고, 식물을 번식시키고 세상이 움직이도록 보이지 않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열심히 본분을 다 하고 있었구나. 맨인블랙의 비밀 요원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길을 건너자 다른 꽃나무에 또 다른 벌 한 마리가 맴돌고 있는 게 보였다. 한 둘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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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발에 툭 뭔가 걸려 채였다. 돌멩이인가 싶었는데 끼에에에엑 소리가 난다. 거대한 매미였다. 생의 끝에 달한 매미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고치처럼 뻣뻣하게 굳어 퍼덕이지도 못하면서 괴성을 내지를 만큼은 아직 살아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