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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5시간전

귀를 기울이면

여름에 어울리는

대학 때 애니메이션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진성 덕후는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상당히 많이 아는, 그래서 일반인과도 대화가 안 되고 덕후들과도 대화가 안 되는 딱 그 애매모호한 선상에 있었다. 유명한 작품들 중 몇 개는 보지 않았는데 너무나 유명하여 마치 본 듯한 착각이 드는 게 있다. 그중 하나가 '귀를 기울이면'이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귀를 기울이면'을 언급했는데 처음 들어본다는 멘션이 달린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안 봤을 수는 있어도 들어본 적이 없다니? 세대가 바뀌었구나. 어느덧 이걸 모르는 시대가 도래했구나. 자동차에 시디플레이어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세대가 있다더니 딱 그 짝이네. 아닌가, 내 또래에도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모르겠다, 아무튼 내 지인들은 지브리 정도야 다 당연히 아니까.


보자, 아직도 내게 말랑한 감수성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로맨스물은 좋아하지 않아서 사랑이 찾아오니 어쩌고 하는 카피 문구가 거슬리지만, 미리 보기에서 보이는 과거 그 시절 레트로 감성에 끌려 결재했다. 작중 시점이 1994년이니, 딱 '응답하라 1994' 격이다.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도 보지 않았다.) 결말이 좀 어이없긴 했지만 마지막 장면만 빼고는 내내 좋았다. 


내 학창 시절은 저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집에 가서 책을 보다 엎드려 졸고, 그러다 일어나서 전철 타고 도서관에 가는데 아직도 한낮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이것은 판타지다. 어쨌든 지금 여름에 보기 정말 좋은 영화다. 극 중에서 나오는 한여름 매미소리와 창밖으로 들리는 매미소리가 겹치면서 묘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책상에 앉아 과자 먹는 모습이 어찌나 현실적인지. 아, 나도 편의점 과자에 맥주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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