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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23. 2024

비자금 통장

푼돈이 주는 자유

비자금, 그런 게 왜 필요해, 어차피 다 내 돈이고 나 혼자 쓰는 건데 무슨 상관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있어보니 참 좋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작은 일탈을 위한 숨구멍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원래도 가계부를 열심히 쓰고는 있었으나, 월급이 사라진 이후 몇백 원 몇천 원 빈틈없이 모두 기록하는 것은 꽤 심리적으로 압박이 된다. 처음에야 일이백 원 아끼는 게 게임하듯 재미있고 즐거웠는데 이게 일상이 되니 갑갑해진다. 매일아침 스페셜티 커피 한잔씩 마시던 내 삶은 어디 가고 저가커피도 아까워서 주저하는 내 삶이여. 물론 카페인을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안 하는 거와 못하는 것은 다른 법. 이럴 때 비자금의 존재는 숨통을 틔워준다.


내 경우 비자금의 주요 출처는 네이버페이 포인트 적립, 탄소중립포인트나 손목닥터9988 등의 정책포인트, 당근 판매금 등의 소소한 푼돈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쌓이면 금방 만원대로 올라온다. 그리고 이 얼마 안 되는 돈이 꽤 든든하다. 주로 카페에서 멍 때리고 싶을 때 커피 한 잔, 편의점 맥주 한 캔과 과자 등, 안 써도 그만인데 쓰고 싶은 자잘한 것, 주로 스스로 금지한 불량식품에 쓴다. 자잘한 것들이라 만원으로도 꽤 여러 번 일탈을 즐길 수 있다.


소비금지 항목들을 가계부에 기록하지 않고 몰래몰래 즐기다 보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조금 과장하면 화수분을 가진 느낌, 써도 깨알같이 채워지는 주머니이니 말이다. 역시 사람은 숨 쉴 틈이 있어야 하고 쓸모없는 소비도 조금 해야 정신건강에 좋다.


금액은 매달 다르지만, 6월은 꽤 많이 모였다.

- 손목닥터9988 서울페이 전환금 : 2만 원

- 탄소중립포인트 : 2,600원

- 네이버페이 포인트 : 5천 원

- 당근 거래 : 11,000원


지금도 이 비자금으로 카페에 나와 커피를 마시며 통창너머 비를 구경한다. 회사 건물 1층이라 오가는 직장인들의 에너지도 공급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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