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월 사용분에 대한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받았다. 예상과 달리 많이 나와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창문의 빈틈을 신문지와 뽁뽁이로 꼼꼼히 메꾸고 바닥에 러그를 깔며 내심 관리비가 줄어들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노력이 배신당하니 갑자기 허망하여 전기와 난방을 펑펑 낭비하고 싶어졌다. 성공한 절약은 성취지만 실패한 절약은 찌질함이 되니. 찌질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 며칠 전에 끈 비데 온열시트 전원을 다시 켰다.
부자가 더 짠돌이처럼 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이 더 낭비하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 달에 몇 백을 저축할 수 있는 사람은 쑥쑥 돈 쌓이는 게 보이니 재미가 있어 더 아낄 곳은 없을까 저축액을 더 늘릴 수 없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한 달에 10만 원씩만 저축할 수 있다면, 모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모으든 써버리든 큰 차이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이렇게 아껴서 뭐 하나 싶은 마음에 그냥 확 써버리게 된다. 가난한 자가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을 이어나갈 의지가. 그러니 요즘 젊은것들이 어쩌고는 절반은 부당한 비난이다.
평상시 몇 천 원 아끼려고 노력하면 뭐 하나. 아무것도 안 해도 관리비가 그냥 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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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많이 벌어봐야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화내는 사람들의 주장을 매우 싫어한다. 내가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 사무직이 되었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생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끔찍하다. 남이 노력 없이 꿀 빠는 것처럼 보인다면 자기도 그냥 그 편하고 쉬운 길을 가면 될 것 아닌가. 공정과 능력주의, 자유경쟁을 외치지만, 실상은 그저 계급제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사농공상의 사에 '내 노력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나는 상것들과 평생 다른 부류이어야 한다는 마음. 설혹 내가 생산성이 더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집에서 평생 살 수는 없으니 이사 갈 만한 곳을 가끔 찾아본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가격이 적당하고 위치가 좋은 신축은 다 특별공급이거나 임대주택이다. 조건이 되는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이 한편에서 고개를 든다. 저렴한 가격에 살게 해 주는 것을 넘어 시세차익을 보게 하는 것은 조금, 부적절한 것 아닌가 하는 시샘이 들기도 하고. 여우의 신포도 마냥, 무언가 안 좋은 게 있을 거야, 결로가 있거나 관리가 잘 안 된다거나,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도 혜택을 받고 싶다. 어차피 한 곳에 정착할 생각도 없었으니 굳이 집을 사지 말고 지금까지 버텼어야 했나 생각해 본다. 당첨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지금 누릴 수도 있었을 저렴한 주거비와 신축의 편의시설과 시세차익을 15년 넘게 전세로 옮겨 다니며 사는 번거로움과 영원히 내 집을 못 살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의 가격이라 생각하면 합당한 걸까.
이래서 은퇴한 노인들이 극우 보수가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내 마음을 잘 지켜야지. 나도 살기 팍팍한데 왜 저들만 혜택을 받느냐며 억울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