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의 딜레마
사수가 이제 너도 상품을 기획해보라고 했다. 듣자마자 두근거리면서도 무서웠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먼저 다른 직원들처럼 걷기 여행을 콘셉트로 잡았다. 그들은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길 명소를 찾아내 에코여행을 진행하고 있었다. 도보로 산을 오르고 내리고, 현지식을 먹고 밤에는 자연 속에서 수다를 떨다가 자는 그런 힐링 여행. 당시에는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도 붐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런 길을 한 번 찾아봤다. 강원도 쪽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도보길이 있었는데 그 지역 출신 작가가 함께 만들었다고 했다. 위치도 대관령 양 떼 목장과 가깝고 사진을 보니 코스가 그렇게 힘들지 않아 보였다. 흥미가 생겨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프로그램을 러프하게 짜서 사수에게 보여주었다. 한 번 컨택을 하고 답사를 가보자고 했다.
길을 개발하신 국장님과 만났다. 내가 너무 어려 보여서 처음엔 조금 당황하신 것 같았는데 그래도 같이 간 사수 덕분에 일 얘기는 막힘없이 할 수 있었다. 호쾌하고 수더분하시고, 이 길을 알리는 것에 적극적인 분이셨다. 일단 국장님이랑 같이 길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한 번 걸어보니 바로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길의 1코스가 끝나는 지점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었고, 2코스 끝은 해변으로 이어져서 굉장히 예뻤다. 근처에 관광할 수 있는 명소도 있었다. 길도 폭신하면서 경사가 완만해서 걸을 때 많이 힘들지 않았다. 딱 1박 2일로 엮어서 첫날 저녁에는 길을 함께 만든 작가님과의 대화 시간을 넣고, 둘째 날은 바다도 보고 관광명소도 즐기는 시간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았다. 회사로 돌아와 작가님과도 컨택해서 세부 내용을 조정하고, 국장님께 연락해 상품 페이지에 올릴 사진도 받으면서 상품 론칭을 준비했다.
그렇게 내 담당 여행 상품이 하나 탄생했다. 내가 메인 가이드이긴 했지만 혼자서 고객들을 가이드할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해서 항상 다른 직원 한 명이 나와 함께 여행을 진행했다. 첫 여행은 겨울에 진행되었는데, 답사는 가을에 갔던지라 계절 따라 달라진 길 풍경에 당황해서 가이드하다가 길을 잃었다. 길치가 그럼 그렇지... 겨우겨우 제 길을 찾아서 고객들을 데리고 하산했는데 식은땀 때문에 등이 다 젖었다. 다행히 고객들이 너그럽게 넘어가 주셨기에 망정이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한 경험이었다.
한번 길을 잃고 나서부터는 극기훈련이라도 받듯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행을 진행해서 집에 오면 진이 다 빠졌다. 온몸이 아파도 다음날 출근해서 정산하고 보고서 쓰고 있으면 진짜 즐거웠다. 비로소 조금이나마 회사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뭐라도 하나 이룬 것 같아서 조금 기뻤다.
그즈음 다른 직원들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들 세상을 보다 이롭게 만들고 싶어서 공정여행사에 입사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우리 회사의 여행 상품은 현지에서 상품을 강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현지인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자 했기 때문에 가격이 꽤 비쌌다. 주류 여행사들의 상품보다 거의 2배 이상 비쌌던 것 같다. 그래서 주 고객층이 공정여행에 관심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40~50대들이었다.
직원들은 자신의 여행을 자신이 가장 기여하고 싶은 사회 취약계층은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괴로워했다. 또 시장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노력하지만, 얼마나 직접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본인의 성과를 의심하고 있었다. 세상의 문제를 바꿔보겠다고 입사해서, 본인들의 경력에 비해 급여도 많이 적게 받고 있었는데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지쳐가는 기색이었다. "내가 만든 여행을 비싸서 내가 갈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해."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회사는 평가 지표가 없었다. 다른 회사처럼 매출 대비 영업 이익이 얼마 났는지 등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생긴 영리 조직인만큼 회사의 상품이 1년에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는지 성과를 알 수 있는 상품 진행 빈도, 모객 수, 지역에 환원된 수익 등 같은 세부 평가 지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체 여행 산업에서 공정여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5% 미만이다' 이런 거시적인 통계 자료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본인의 일에 대해 지속적인 역동성과 동기를 가지고 일하기는 어려웠다. 나야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신입이지만 그분들은 지켜야 할 가정도 있고,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았으니 고민의 농도와 결이 사뭇 달랐다.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직원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그때부터 나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사회에 필요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나아가서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이 조직에서 버티고 살아남아 정직원이 된다고 한들, 지금 직원들이 하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여행 상품이 이들의 여행 상품과 뭐가 다르지? 다른 직원들은 여행이 좋아서 자신의 문제의식과 엮어 이걸 직업으로 삼기라도 했지, 나는 여행 상품 개발이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여러 가지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출근을 했다. 나의 직업적 성장에서 급급했던 것에서 벗어나 내 미래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이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