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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Sep 06. 2020

05. 제도권 교육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스무 살이 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느 날 출근해서 내 책상 위에 놓인 넷북을 봤다. 그때까지도 나는 집에서 들고 온 넷북을 쓰고 있었다. 중소기업 제품인 30만 원짜리 넷북으로도 보고서 작성은 할 수 있었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다.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탑재되어있는 넷북이 마치 지금 내 처지 같았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어느 것 하나 발전이 없는, 가성비만 괜찮은 인간.


주변을 둘러보면 직원 분들은 다 명문대 출신이었다. 다들 자신이 대학에서 형성한 커뮤니티를 토대로 일 외에도 뭔가를 자꾸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를 그만둬도 갈 곳이 있는데,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고졸에 경력도 없는 나를 누가 받아주겠어. 그 절박함이 나를 자꾸 이 곳에 붙잡아놓고 있는 것 같았다. 노동법상 인턴은 3개월까지만 고용할 수 있어서 3개월마다 재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이미 2번의 재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여전히 인턴이었고 월급은 290,100원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적은 월급이었다. 나는 정직원 전환과 월급 인상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는 상황에서 1년을 버텼다. 그때 내가 가장 자주 했던 생각은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을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만큼만 이라도 벌고 싶다'였다. 대안적으로 살고 싶었지 굶어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대학과 스펙에 기대지 않고 살려면 다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내 첫 진로 실험은 실패했다는 것을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경제적 성인으로 거듭나지도 못했고, 내 미래를 위한 전문적인 일 경험을 쌓지도 못했다. 회사에서의 내 위치가 인턴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조직에서의 내 발전 가능성과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회사는 공정, 대안 이런 이름이 앞에 붙어도 다른 회사와 똑같거나 오히려 더 못한 것처럼 보였다. 1년이 지나도록 직원들에게 컴퓨터 한 대도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었고, 일의 체계란 없었으며 대가로 받는 월급은 꼭 죽지 않고 살만한 정도였다. 다들 자기 앞가림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이게 내가 꿈꾸던 대안적인 삶이 맞는 건가?


그래서 나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 내 소중한 스무 살, 어차피 돈 못 벌 거 공부라도 하자. 이번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라도 하고, 학력이라도 따고, 그리고 대학 커뮤니티에 한 번 소속되어보자. 남들이 다 밟는다는 그 정해진 코스, 나도 한 번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기로 했다.



 

퇴사하고 대학에 가겠다고 말하자 사수는 거의 기겁을 했다. 사무실에서 따로 데리고 나와서 왜 그만두냐고 물어봤다. "왜겠니. 너 같으면 1년 동안 월급 290,100원 받으면서, 일하다 발목 다쳐도 쉴 수가 없고, 정직원으로 전환해준다는 보장도 없는 회사에서 계속 다니겠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냥 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사수는 나에게 한 달 동안 더 생각해보라 말했지만 나는 확고했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습니다.


송별회 때 내 첫 사수였던 분은 나에게 대학 이외의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슬펐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사회적 기업에 들어온 건데, 내가 가지고 나가는 것은 누구도 그 속내는 알 수 없는 이력서에 쓰일 딱 한 줄의 이력뿐이었다. 이 회사에서 건진 것은 사람도 전문성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이 정도의 진한 경험을 했으니 다음 스텝은 더 잘 밟을 자신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고, 좋은 말에 현혹되지 않고, 혼자서 굳세게 나아가자. 선배들도 개척하지 못한 길에 어리고 미숙한 나를 갈아 넣지 말자. 일단 내가 먼저 살고 보자.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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