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아프다
대학 입학 전 나의 사회생활은 진짜 사회로 진입하기에 앞서 백신을 맞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시기 없이 바로 사회에 진출했다면 나는 더 큰 상처를 받고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약한 병원체를 먼저 몸에 넣어 큰 병을 예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회사를 그만둘 무렵, 나는 친구에게 자주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그 와중에 월급 이야기도 했다. 친구는 이걸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무서우니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친구는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내 이야기를 SNS에 올렸다. 친구가 여기 다니는데, 월급 이거 받고 일한다고. 내가 퇴사한 뒤 올린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 글을 보고 회사의 리딩 그룹 중 한 명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근데 그 방식이 희한했다. 바로 나와 함께 인턴 생활을 지냈던 청소년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 갔을 만한 근원지를 색출하고자 했다. 정확히는 누가 내 친구와 연락하냐며 손을 들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나서지 않고 그 아이들을 통해 연락을 취하게 만들었다.
청소년들 중 몇 명이 친구한테 연락해서 그 글을 내리라고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아냐고 화를 냈다고 했다. 친구가 SNS에 올린 글은(비록 내 동의가 없긴 했지만) 온전히 사실만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인턴을 한 청소년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곁에서 봐왔다. 나에게 종종 자기들이 들어오기 전에 혼자서 이 조직에서 어떻게 버텼냐고 물어보기도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때 느낀 배신감. 그리고 그걸 종용했던, 소위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는 어른들. 그리고 당사자인 나의 동의 없이 SNS에 '내' 이야기를 함부로 올린 친구까지. 집 근처 거리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울고 있던 나에게 전화해서 괜찮다고 울지 말고 있으라고 안심시켜준 것은 회사의 그 어떤 사람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고, '성숙한' 어른 1명이었다. 이런 사안을 처음 접해봤을 어린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상처를 먼저 신경 쓰는 어른.
결과적으로 나에게 해가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청소년들 시켜서 내 친구한테 글 지우게 한 것 외에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꼈던 공포는 사안에 비해 과장된 것이었다. 누구도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았고, 회사에서 욕지거리가 섞인 연락도 받지 않았다. 단순히 그 사람들과 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된 것뿐이었다. 꽤 무난하고 경미한 사안이었다.
대학 입시 준비 기간 동안 필요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사회적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본 생활비만 충족된다면 사회적으로 이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근데 면접하러 가보니 거긴 한 술 더 떠서 무급인턴을 뽑고 있단다. '무급...?' 처음엔 들은 내 귀를 의심했다. '무급'과 '인턴'이 연결될 수 있는 말인가? 자원봉사자를 뽑는다는 건가? 나는 일자리를 구하러 간 엄연한 구직자인데 나에게 사회적 가치가 어떻고 저떻고, 함께 그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
그때 한창 '무급인턴'을 뽑는 게 사회적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아마 무급인턴제도가 보편적인 서구권에서 따온 듯했다. 영미권과 유럽 모두 취업 시 '인턴 경험'이라는 스펙이 갈급했던 청년들을 이용해 정치권부터 대기업, 스타트업까지 모두 무급인턴들을 채용했다. 다만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인턴제도가 빨리 정착한 서구권의 경우 인턴의 노동자 지위에 대한 법적 합의가 불분명하다는 제도의 맹점을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이를 이용해 고용주들이 인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관련 지침들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특히 미국은 약 반세기 전부터 인턴과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employee) 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지침들을 마련해왔다. 미국 노동부는 1947년 Walling v. Portland Terminal Co. (330 U.S. 148)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1967년 최저임금 적용대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에 대해 비공식적 내부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지침에는 판결에서 인용한 6개 기준이 모두 충족된다면 해당 훈련생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2010년에는 ‘영리’ 민간기업에서 근무하는 무급인턴에 대해 동일한 6개 기준을 포함하는 유사한 지침을 발표했다. 6개 기준은 아래와 같으며 모두 충족되는 경우에 한해서 비근로자 지위(non-employee status)가 인정된다.
① 인턴제가 고용주 사업체의 실질적 운영과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교육적 목적에서 제공되는 교육훈련적 성격이 있어야 한다
② 인턴제는 인턴들에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③ 인턴은 정규직 근로자(employee)의 일자리를 대체해서는 안 되며 기존 직원의 면밀한 감독하에 근무해야 한다.
④ 훈련을 제공하는 고용주는 인턴의 업무 활동으로 인한 어떠한 즉각적인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되며, 때로는 사업의 운영에 실질적인 방해가 될 수도 있다.
⑤ 인턴 기간 종료 시 반드시 채용되는 것은 아니다.
⑥ 고용주와 인턴 양측은 인턴이 인턴 기간 동안 임금을 받을 권리가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2011년 희망제작소에서 점심 식대비 5,000원을 지급하는 무급인턴을 고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그때 인턴 당사자들이 많은 것을 배웠고, 노동력의 대가가 꼭 돈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터뷰해서 일단락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급여를 주지 않고 인턴을 고용한다는 것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자 당시 희망제작소 측은 내가 만난 사회적 기업가와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는 월급 말고 꿈과 비전, 사랑을 준다고. 이걸 급여를 주고 안 주고의 문제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난 이제 막 시작한 사회적 기업과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기구)가 대체 왜 이렇게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어야만 하는 '무급인턴'을 고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인턴이라는 제도는 서구권에서도 그래 왔듯 교육과 노동이 혼재되어있고, 노동자 지위 부여에 대한 법적 합의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아 비판과 논란이 많은 제도다. 브라질에서는 2008년 인턴십 법(lei do estágio, 2008년 9월 25일자 법률 제11,788호)까지 따로 제정할 정도로 '인턴'이 지닌 노동자/교육생 지위의 혼재성은 명실상부한 사실이다. 미국이나 브라질처럼 관련 지침이나 법이 없는 한 고용주가 인턴들로부터 얻는 이득은 명확하고,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인턴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노동 착취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특히나 무급인턴의 경우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무급인턴제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의 청년들만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고, 그 인턴십은 다시 스펙이 되면서 부익부 빈익빈까지 발생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소위 사회적 기업, NPO에서 일하신다는 분들이 이런 노동법적, 사회계층적 이슈들을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사회적으로 좋은 가치', '꿈과 비전, 사랑' 같은 미사여구로 나 같은 청년들이 받는(혹은 아예 받지도 못하는) 열정페이를 정당화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면접 보러 간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원하는 건 나처럼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의 청년이었다.
다만 덕분에 나는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향한 이분법적 희망을 모조리 버릴 수 있었다. 사람은 그림이나 사진처럼 납작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 선과 절대적 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둘 다 같이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자. 언더도그마의 함정에서 탈출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