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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Sep 22. 2020

08. 내가 동기를 사랑하는 법

방식의 차이

솔직히 대학에 들어갔을 때 동기들과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친구들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함께 술을 마시며 친목을 쌓아가고 싶었고, 그런 단체 술자리들을 자주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운운하는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대다수의 '공동체'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집단 같았다. 대의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할 때, 그것이 용이하도록 좋아 보이는 겉포장을 씌워놓은 조직.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 시간 없이 같은 학과, 지역, 성별 등의 이유로 우르르 몰려서 술기운에 단합을 도모하는 게 마치 그런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처럼 느껴졌고, 내가 아닌 조직에서 원하는 타인을 연기해야 하는 역할극처럼 보였다.


이렇게 생각부터 차이가 있으니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동기들은 나이가 많은 나에게 자기들이 느끼는 불만은 말하지 못하겠고, 나는 나대로 불편한 자리에 자꾸 불러대고 공동체를 강조하는 그 문화가 싫어 회피만 하고 다녔다. 아이들은 내가 우리 학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래.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내가 이 과에 들어와서 느끼는 충만감과 행복감, 그리고 동기에 대한 고마움을 술자리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의 표현방식을 보여주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당시 우리 과는 좀 독특한 상황이라 재학 중인 선배가 딱 1명 있었다. 그는 한참 고학번이었다. 근데 그 선배가 우리 남자 동기들을 때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당사자들한테 확인하니 진짜였다. 술 마시고 동기들을 불러내서 그렇게 때린다더라. 너무 화가 났다. 나이가 많다고, 고작 학번이 더 높다고 어린애들을 때리고 다니는 그 꼴이 정말 보기 싫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엉클 피터의 말도 모르나?


학교 축제날이었다. 나는 선배에게 폭력 사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날 집에 안 가고 새벽까지 술자리에 남아있겠다고 했다. 동기들은 언니가 웬일로 이렇게 남아있냐며 엄청 좋아하면서 같이 술을 마셨다. 그깟 일로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었다는 게 미안했었다.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로는 나도 조금 무서웠던지라 약간 알딸딸할 정도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 1시에서 2시 정도 됐을 무렵,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동기들 앞에서 선배에게 얘기했다. “우리 애들 때리지 마세요”


선배는 당황하면서 변명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그런 적이 없는데 어디서 들은 이야기냐고. 

다 들었다고, 오빠 술 마시고 제 남자 동기들 때리지 않냐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 말라고 얘기했다. 동기 중 한 명이 옆에서 만류하듯 내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동기 중에서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아싸가 되어도, 왕따를 당해도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여기 공부하러 들어왔지 친목질 하러 들어왔어? 더군다나 나는 학교생활에서 선후배 사이의 권력질보다 사회에서 전과가 남는다는 것의 무서움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선배가 날 때리면 바로 경찰에 합의 없는 신고를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선배는 곧 변명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개소리 월월해대는 것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기억나지 않는다니 유감이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못 박았다. 물론 그 선배는 조금 잠잠하다가 또 술 마시고 애들에게 손찌검을 했다. 나중에는 졸업한 고학번 선배들과 교수님까지 개입할 정도로 사건이 크게 비화되었다. 교수님은 폭력사건의 재발 방지에 대한 장문의 글을 써와서 우리들 앞에서 낭독했다. 가져오신 대책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낭독은 교수님이 선배를 지켜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되어 그 선배는 더 이상 우리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내가 동기를 챙기는 방식은 그런 거였다. 진짜 동기들을 위한다면 이런 직접적 피해가 가해지는 그릇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술자리에서 험담으로만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힘을 합쳐 당당하게 문제 제기하고, 책임자에게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끝까지 잘 해결되었는지 감시하는 것. 나는 그게 학과나 동기들 모두에게 보다 이로운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당시 나의 역할은 '문제 제기'에만 그친 측면이 있어 아쉽다. 내가 한 역할은 그 선배의 폭력을 수면 위로 올린 것, 딱 거기까지였다.


어쨌든 동기들에게 내 방식을 정확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단체 술자리 같은 선호의 영역은 무시하지만,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는 행동한다.' 그때 이후로 조금씩 아이들과의 관계가 풀렸다. 나도 내 험담이 돌고 있다는 걸 알아서 동기들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진 않았는데, 그 이후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쉬는 시간이나 공강 시간에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너희들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 보고자 노력했다. 1학기가 지났을 무렵에는 서로 오해가 많이 풀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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