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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Sep 19. 2020

07. 스승이 많으면 꿈으로 간다

대학 커뮤니티 = 스승들의 모임

처음 대학교에 등교하기 전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긴장돼서 토할 것 같다가도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맘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 잠이 안 왔다. 더 이상 회사에서 소진되지 않아도 된다!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출근이 아니라 등교로 내 일상이 바뀐다는 것에 심장이 몹시 뛰었다. 또 나는 ‘대학은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뿐만 아니라 학생들끼리도 서로 배울 수 있는 토론형 수업, 고전과 최신을 아우르는 이론들, 질 좋은 장서들을 보유한 도서관...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첫 학기에는 최대 수강 학점인 21학점 중 20.5 학점을 신청했다. 교필 4개, 교선 2개, 전공 3개로 나름 적절히 분배했고, 교선은 예술과 영화 관련 수업으로 골랐다.


나는 내가 원하는, 그리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수업의 상이 명확했다. 자기 주도형 토론식 수업. 선생과 학생이 합의된 화두에 맞게 스스로 내용물을 준비해서 함께 논쟁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원했다. 특정 권위를 지닌 1명은 강단에 서고, 나머지 다수는 의자에 앉아서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일방향적 수업은 배움을 한정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못마땅했다. ‘배움’이라는 게 오직 선생에게서 학생으로만 이루어지는 건가? 공자님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셨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는 못한 것을 보아 나를 고칠 수 있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에게서는 훌륭한 것을 골라 따를 수 있으니 어떤 사람이든지 배울 점이 있는데, 일방향적 주입식 교육은 그런 기회조차 차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점에서 전공과목들은 정말 재밌었다. 날 면접 보았던 우리 학과장 교수님이 강의하셨는데, 비록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자기 주도형 학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나와 결이 맞았다.


교수님은 주로 특정 콘텐츠를 통한 화두를 던져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셨다. 일정 정도 이론에 대한 강의가 끝났으면 그다음부터 수업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우리였다. 스스로 생각한 것의 결과물은 자유 주제, 자유 형식, 자유 분량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대체로 리포트와 ppt가 주였지만, 사진이나 영상물을 만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첫 학기에는 다 같이 해온 과제물 중에서 우수작품들을 교수님이 뽑아서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서로에게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어떤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글을 잘 쓰고, 어떤 친구는 찍어온 사진마다 작품이었다. 학과 동기들은 항상 나에게 영감과 배움을 주는 훌륭한 메이트들이었다.


내 주특기는 글이었다.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서 글로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자료는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또 어떤 유형의 자료를 보아야 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동기들이 낸 과제물과, 그 과제물에 담긴 생각들을 보면서 점차 스스로 풍성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원하고 노력한 만큼이 과제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도 좋았다. 회사에서는 내 위치와 회사 체계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대학은 달랐다. 내가 하는 만큼 나는 더 발전할 수 있었다.




기대와 달랐던 점도 있었다. 대학에서는 토론형 수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기 주도형 수업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교수님들은 토론형 수업을 진행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고, 학생들도 수업에서 토론한다는 것을 어색해했다. 수강생이 100명 이상인 대형 강의인 경우에는 더더욱 진행하기 어려웠다. 대형 강의는 학생들끼리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없었고, 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각자도생 하는 구조라 아쉬웠다. 나는 각자 전공이 다른 학생들끼리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 문제의식을 좀 더 날 서게 드러내고, 전공 지식을 활용해서 토론하는 걸 기대했는데 그 부분이 제일 아쉬웠다. 논쟁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개선시키고 공고히 하는 경험은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무한히 많은 스승이 내 곁에 있다는 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 내가 노력하는 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좋아서 학기 내내 공부에만 매진했다. 전공과목 시험은 4시간 동안 서술형으로 봤었는데 시험 문제도 재밌고, 교수님이 중간에 애들 배고프지 말라고 짜장면도 시켜주셔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첫 학기 평점 평균이 4.5 만점에 4.5가 나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고?? 믿을 수가 없어서 엄청 놀랐다. 그 학기 수업은 절대 평가였기 때문에 운 좋게 만점을 받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군’. 다시 오지 않을 성적이라 생각하고 성적 나온 날 가족들이랑 외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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