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 손녀딸
이번 설에는 처음으로 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불교를 믿는 외가댁에서는 항상 차례를 절에서 지냈는데,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차례상에는 외할아버지와 큰외삼촌의 사진이 나란히 올라와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보는 큰외삼촌 얼굴이 낯설었다.
외삼촌과 엄마가 종종 거리면서 차례를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늦었다.
"할아버지 화 내시는 거 아냐?"
생전에도 항상 일찍일찍, 준비는 미리미리를 강조하시던 불 같은 성격의 할아버지였다. 차례를 9시에 지내기로 했는데 9시 30분까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니. 살아계셨다면 결코 용납하지 못 하셨을 거다. 아마 경을 쳐도 한참 전에 치지 않으셨을까...
나의 성격적 장단점들은 모두 외할아버지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완고하고, 원칙주의자셨으며, 굉장히 세밀하고 꼼꼼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셨다. 실제로 그럴 능력도 되셨다. 머리가 굉장히 좋으셨는데 특히 기억력이 비상하셔서 소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이름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기억하시던 분이었다.
또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기셨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하실 때도 회식 같은 것 일절 없이 정시 퇴근해 할머니와 함께 집에 들어왔고, 때 되면 고기를 사서 가족들과 함께 마당에서 구워 먹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낭만이 있는 분이셨다.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이셨는데도 항상 나에게 네가 남편에게 힘이 있으려면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던 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롤러코스터급으로 바뀌는 할아버지 태도가 재밌어 속으로는 웃으면서, 앞에서는 세상 참한 손녀인 것마냥 눈을 반짝거리며 끄덕끄덕하고 들었다.
20대가 되어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서 보이는 거 같아 종종 놀랐다. 나 또한 완고하고, 원칙주의자며, 세밀하고 꼼꼼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했다.(엄마는 할아버지와 정반대 성향이다.) 할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나에게 계속 공무원 시험을 권하셨다. 공무원 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셨던 분이었다.
'할아부지... 할아부지 손녀는 반골이에요...^^'
어쨌든 나는 할아버지처럼 9시 약속인데 9시 2분에 오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었다. 항상 속에 분노가 들끓었는데,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가 이래서 항상 화가 나 계셨구나......
다만 나는 그 분노들은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운동을 한다던가,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낮춘다던가. 그렇게 홀로 씨름하고 있다 보면, 화 나 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사실 웃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더 많이 보고 싶었다. 빈말로도 다정하다고 할 수 없고 어렸을 때는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도 싫었던 할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할아버지를 꽤 좋아했다. 저렇게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시는 할아버지가 신기했고, 재밌었다. 명절 때 들려주시는 유교 이야기도, 부처님 이야기도 재밌었다. 할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으면 아는 것도 많고, 금지옥엽 둘째 딸의 딸들 챙겨주시겠다고 항상 이것저것 쥐어주셨다. 우리가 온다고 하면 집 앞에 서서 언제 오나 기다리시던 분이었다.
그랬던 할아버지의 첫 차례다. 생전에 직접 고르셨다던 사진 속 할아버지는 검은색과 금색의 반무테 안경에, 정장을 입고 무표정으로 가죽 의자에 앉아 있어 제법 무시무시해보였다. 건강하던 할아버지 모습이랑 똑같다. 호랑이 할아버지.
벌써 시간이 9시 33분이다.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엄마의 말을 뿌리치고 칼을 집어들어 밤을 깎았다. 엄마는 32살의 내가 아직도 아가인 줄 안다.
"할아버지 오시다 화내겠어."
이번엔 첫 차례니까 조금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무슨, 할아버지 성격에 어림도 없지^^ 내년부터는 좀 더 일찍 준비해야지. 가신 분은 여기 없는데, 왜 계속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 할아버지 없는 명절이 아직은 낯설다. 어디선가 우렁우렁 우리 엄마 이름을 부르실 것 같다.
차례상에는 우리는 아무도 먹지 않고, 오직 외할아버지만 드시던 생선전이 올라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