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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03. 2020

날갯짓하는 진실한 모두에게


MOM : "I want you to be the very best version of yourself that you can be."

Lady Bird :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영화 <레이디 버드> 中



기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다른 영화 한 편이 삶을 돌아보게 만들 때, 영화가 이제 올드 미디어의 예술이 되었다고 한들 다시 사랑이 커진다. 우리는 인생 한 편을 개정하기 위해 힘쓰는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나, 그리고 삶의 의지 혹은 가능성을 매일 확인하면서, 자기 전 <To do list>를 새기고 새해 목표를 잡는 것이다. 


어쩌면 막연함을 믿는 것이다. 내일보다 한 달 후, 내년, 10년 후의 내 모습이 지금보다 좋을 것이라는 그런 것. 그리고 막연함은 젊음을 다시 뛰게 하고 못나게 산 오늘을 반성하게 한다. 막연함은 뇌의 반성 체계를 작동하게 하는 좋은 약이자 상상 체계를 폭발하게 하는 부스터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까운 오늘과 먼 미래를 떠오르게 할지언정 더 알맞게 짜여야 할 현실감각을 잊게 한다. 막연함은 희미하게 그릴 수 있는 능력밖에 우리에게 주지 않아 잠깐 떠올랐다 사라지게 만든다. 순간의 유효 득점이며 방심하다 나를 쩌릿하게 만드는 구내염 같은 것이다. 


나와 대학이 약속했던 8학기가 끝나고 막연함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날아오르려 날갯짓하던 순간순간이 끝나면 여전히 대단하지 않은 내 모습이 남아있었다.

젊은 날이 고뇌로운 이유는 나의 근본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평생 같이 살기에 그것은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며 너무 오래 둬서 물러 터질 것 같다. 이 영화는 근본을 담았다.


'레이디 버드'는 주인공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선물한 껍데기 이름이다. 이 껍데기를 만든 데에는 돈도 시간도 큰 노력도 들지 않았다.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소개하면 될 뿐이었다. 껍데기를 완성한 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탈출을 위한 장치들을 설정했다.


1. 대학은 고향과 멀리 있는 곳에 갈 것

2. 친구관계를 바꿔 볼 것

3. 부모님께 지지 말 것

4. 사랑을 할 것


영화는 이 장치를 사용해 인생 개혁 작전을 펼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껍데기 이름으로 시작하여 더 적극적으로 인생의 순간들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선택의 결과는 주체를 넘어지게 하고 부딪히게 하며 깎이게 한다.  사랑은 마음을 채워주지 않고 엄마야말로 딸을 가장 모른다. 친구는 내가 본받기에 보잘것이 없어 보이고 대학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


나도 레이디 버드와 같았다. 19년을 함께 한 내 근본 탈출을 위해 대학 교정에 들어선 후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방송국 신입 국원' 지원이었다. 신입생 OT 때 대강당에서 울려 퍼진 대학 방송국 홍보영상은 마치 내 인생을 구하러 온 구원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느낌을 적당한 틀에 맞춰 동기화시켰다. 진짜로 원했던 건 PD로 활동할 수 있는 제작부였으나 곧 경쟁률이 가장 세기 때문에 합격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도부'로 지원서를 넣었다. 


이른바 껍데기 이름이었던 셈이다. 방송일을 하는 건 누구에게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내 오랜 꿈이기도 했다. 지독한 입시 경쟁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과 선택뿐인데, 나는 사실 '신방과' 라던 가 요즘 말로 '미컴과'라던가 하다못해 비슷한 과를 지원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조그맣게 저장해놓고 플레이 버튼은 누룰 용기가 없었다. 방송국에 지원한 것은 나를 바꾸려고 처음 버튼을 누른 셈이었다.


껍데기 이름으로 시작해 교내 보도 기자로 살아온 나의 스무 살, 스물한 살은 좁고 협착한 고생길이었다. (노래는 재생되기 전이 가장 애닳는다) 플레이 버튼을 눌렀더니 그 전파에 발생되는 수많은 선택을 감당해야만 했다. 동경과 재능 사이의 간극은 너무 멀었고 그걸 마주하기에 스무 살은 너무 어렸다. 그럼에도 이 선택에 후회나 원망 따위는 한 톨 없다.


선택의 기준은 '옳은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 이 되어야 함에 너무나도 공감하기에.

이 영화가 말해주듯이.


껍데기 이름뿐이어도 내 마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 안달 났던 그 시절이었다.

내 첫 정을 가져가 버린 대단하지 않은 경험이 5년이 지나, 이 영화와 함께 회자되고 있었다.

비록 날아오르지 못해 날갯짓에 불과했어도 진실에 뿌리를 둔 선택은 범시간적으로 유효하다.


고향을 떠나 처음 마주한 자유 속에서 여전히 그리 대단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비로소 스스로를 '크리스틴'으로 불러준 그녀처럼.

그 앞에 무수한 찌질함을 겪으면서 말이다.

진실한 선택만이 그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Best Version을 짓는다.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막연함의 세계를 더 크게 지을 뿐이다. 

자아가 대단히 뛰어나지 않아도 좋다. 선택하며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이 Best Version  자체이다.



모든 출발점으로부터 인과의 사슬이 흘러나온다.

출발점을 선택하면 그에 따른 현실이 펼쳐져 나온다.

선택된 출발점에 따라서 다른 인생 트랙을 따라 현실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얻는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中

 바딤 젤란드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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