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작은 아마도, 내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 어린 시절의 경험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유년기에 나는 거의 항상 울고 있었다. 나중에 커서 직접 보라며 내가 우는 모습을 사진으로 모두 남기신 부모님 덕분에 나의 앨범은 우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나는 어딜 가나 엄마를 쫓아다녔고, 유치원에 갈 때도 등원 후,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기 전까지 보이는 곳에 엄마가 있어야 했다. 나는 엄마 바라기였다. 국민학교에 갔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로 나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고, 그 어린 나이 만 6세에 나의 등교거부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결석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아주 잦은 지각이 있었을 뿐이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리 큰일이 아니지만, 그 당시 부모님의 생각은 지금의 나와는 달랐나 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뚜렷하지 않은데, 이 날만큼은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다. 엄마가 어디를 간다고 나 보고도 나오라고 하셨다. 냉큼 따라나서서 차에 함께 탄다. 난 항상 멀미를 해서, 차 안에서는 엄마 무릎을 베고 가로로 누워서 자곤 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멀미를 피해기 위해 잠에 들었고,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이었다. 건물 앞에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 친구분이 다른 두 명의 사람과 함께 나란히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기에 엄마 옆에서 붙어서 나란히 함께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조금 걸어가서 어떤 문 앞에 서서 문 위에 달린 카메라를 쳐다보자 문이 열렸다. 모두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어른들끼리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엄마가 인사를 한다. 엄마가 문 밖으로 나간다. 따라나서려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붙잡았다. 엄마를 외치며 울고 또 울었다. 나만 남겨지고 엄마는 떠났다. 계속해서 울었다. 달래주는 간호사가 있었지만, 오기로 더 열심히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실컷 울어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매우 목이 마르다. 다음날 눈을 뜨고 목이 말랐다. 난 숫기가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못했었다. 목이 마르지만 물을 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담당자인 듯 한 간호사가 들어와서, 아침이니 양치하고 세수하라며 세면대로 안내했다. 양치를 하고 입을 헹구면서 입 안에 물이 들어왔다. 입을 모두 헹구고는 더 헹구는 척하며 수돗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나에게 초록색 작은 알약을 주었다. 그 당시 나는 알약을 먹을 줄 몰랐고, 엄마가 항상 알약을 가루 내서 먹을 수 있게 도와주곤 하셨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나는 알약을 받아 들고 입안에 넣은 후, 물을 마셨다. 혀에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 물을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셔서, 결국 알약을 삼켰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혼자 남겨진 나는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곳은 정신병동이었다. 어린이 폐쇄병동이었다. 내 눈에는 거의 어른으로 보이는 십 대 후반도 있었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은 없었다. 가끔 엄마가 면회를 오셨고, 엄마가 오시면 외출을 한 후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었다. 아무도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고, 탈출하려다 잡힌 거의 성인인 듯 한 아이가 침대에 묶이는 것을 문 틈으로 지켜봤다. 발버둥 치며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 있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라고 알게 됐다. 몇 달이나 입원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길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만 6세에게 몇 달은 상당히 긴 시간이니까. 집으로 돌아간 후, 학교에 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낯설었다. 내가 다가가지 못하자 한 아이가 먼저 다가와주었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디에 갔다 왔는지는 비밀이어야 한다고.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 나에겐 문제가 있는 거라고. 나는 이상한 아이니까, 아무도 알면 안 된다고. 자주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이유를 설명해 줬더라면-어땠을까. 나는 병원에 다녀온 후로는 온전히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나에게는 비밀이 있었고 들켜서는 안 됐다. 이유를 모르기에 나라는 존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갔다. 나는 내 담당의에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머리가 약간 갈색빛이 도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의 의사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상대하느라 고생하셨구나 싶지만 그 당시 나는 나를 병원에 있게 한 사람들을 모두 미워했던 것 같다. 아버지를 미워했고, 병동으로 안내했던 아버지 친구도 미워했고, 내 주치의도 미워했다. 하지만, 나를 놔두고 떠난 엄마는 미워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엄마가 세상이었으니까.
성인이 된 후, 아버지 친구분께 물었다. "그때 전 왜 입원했던 거예요?". 그분이 말씀해주시길, 분리불안장애라고 했다. 납득이 안됐다. 엄마와의 분리불안장애인 만 6세를 엄마와 떨어뜨려 병원에 가둬둔다고? 지금 생각하기에는 거의 아동학 대급의 처방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때는 90년대였고, 정신건강 의학도 많은 발전이 있었기에 적어도 지금은 나와 같은 치료 같지 않은 치료를 받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정신과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만 6세에 시작되었고, 거의 30년 후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자발적이라는 거다. 어린 시절 강제로 갇혔던 정신병원에서, 지금은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다. 한 때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던 곳에서, 지금은 다녀오면 내가 나를 보살핀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안정을 주는 곳이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정신과를 다닐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병원에 가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도 않고, 어쩌면 병원에 가지 않는 누군가보다도 내가 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까라고 종종 생각하기도 한다. 나에게 정신과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나는 그저 가끔 도움이 필요할 뿐, 잘못된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