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거북이 같아"

가슴에 박힌 타인의 말 한마디

by 이확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 한마디가 더욱 크게 와닿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한마디들이, 정말 별 것 아닌 한마디인데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한마디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지금과는 물가가 많이 달라서, 백 원 단위의 돈으로도 제법 간식도 사 먹고 하던 꼬꼬마 시절이었다. 한 친구가 내게 150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빌려주었고, 그 친구가 갚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방학이 와버렸다. 잊지 않고 개학 후에라도 그 친구가 갚기를 기다렸다. 결국은 먼저 다가가서 얘기했다. 그 친구가 한마디를 했다. "나 안 갚을 건데?". 너무 당당한 그 아이의 태도에 황당하기도 하고,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서 "빌리다"란 말은 곧, "빌렸으니 갚을게"였다. 그 아이의 안 갚겠다는 말 한마디가 이후에 어디서는 "빌리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움찔하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 옆 자리 친구에게 샤프심을 쉽게 얻어 쓰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나 샤프심 좀 빌려줄래?"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내 머릿속에는'안 갚을 건데 왜 빌려달라는 표현을 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린 시절 친구의 한마디가 몇십 년이 지난 어른이 된 지금의 나도 "빌리다"라는 말에 움찔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병원에 다녀온 후, 사람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었기에 나 자신에게 당당치 못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에 크게 의식하던 시기였다. 중학생이 되었다. 아주 가깝다 할 친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두루두루 잘 지내는 아이였다. 그러다 몇몇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깝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느꼈다. 난 주로 다른 친구들의 말에 Yes를 하는 아이였다. 나는 어느 날, 가까워진 한 친구의 말을 부정하고 내 의견을 내세웠다. 그 친구가 말했다. "너 변했다." 그때 그 애의 말은 긍정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나의 변화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까) 나는 조금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조금 더 나를 보여주었을 뿐인데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모습의 변화를 싫어한다. 그 이후로 더더욱 외적인 변화도 거의 주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말하곤 한다. "하나도 안 변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를 싫어한다. 그러니 나는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 아이의 한마디는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변하고 싶은 나를 붙잡았다.


나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중학생 시절 한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중학생 때 제법 공부를 잘해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나를 알고 있었다. 도덕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너는 거북이 같아. 찌르면 바로 쏙 들어가 버리는". 나의 나약함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나를 그렇게 표현한 그 선생님이 싫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는 공부에 집중할 때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몇 가지 나의 서툰 태도에서 종종 문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어른이 말씀하시면 경청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선생님이 훈계하실 때도 진심으로 경청했다. 다만 내 시선이 문제였다. 한국사회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경청의 자세로 선생님의 눈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한 선생님이 화를 내셨다. "뭘 잘했다고 째려봐." 나는 억울했다. 나는 그저 집중해서 선생님의 훈계를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내 눈빛, 나의 모습이 문제라고 착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혼날 때는 눈을 바라봐선 안된다고.)


고3 때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았던 담임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감정적인 분이셨다. 고3에는 많이 방황하던 시절이었고, 많이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하루는 몇몇 아이들과 이동수업에 빠졌다. 선생님께 불려 갔다.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얘기를 하셨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에게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제가 잘못한 건 맞는데요. 사과를 해야 한다면 담당 수업 선생님께는 해야 되는 건 알겠는데 선생님께는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꽤나 당돌하고 버릇없는 아이였구나 싶다. 그날 내 앞에서 담임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넌 애가 정이 없구나". 그 한마디는 내가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쩌다 한마디들이 내가 나를 정의하게 만들었다. 선한 댓글 백개보다 한 개의 악플이 더 기억에 남고 가슴에 박힌다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으면서 자라났고, 분명 나에 대한 칭찬들도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부정적인 한 두 마디들만이 나에게 남았고, 나에게는 그 말들이 나라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더욱더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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