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의 인간관계
몇 년 전부터 MBTI가 유행이다. 몇 번 해보니, 조금씩 생활에 따라서 생각하는 게 달라져서인지 다르게 나온다. 하지만 변함없는 건 앞의 I이다. E의 성향은 여지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나는 극 I로, 내향형 인간이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면 기가 빨리고, 에너지 소모가 매우 커서 모임 한 번 한 후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진다. 사람과의 관계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에게는 조금 힘들다는 거다. 친구가 없지는 않은데, 나와 가까운 친구로 남은 사람들과의 시작을 생각해보면 모두 그들이 다가왔다. 내가 다가간 게 아니라 모두 먼저 내게 손을 내밀어줬고, 그들이 계속 내 옆에 있어줘서 지금과 같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대학교 휴학 후 복학했을 때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두 명이, 개강맞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저녁에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러 약속 장소인 식당으로 갔더니, 거의 8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만 한가득 있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서 고기만 좀 먹다가, 약간 눈물이 핑 돌았던 것 같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지만, 난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다들 남아있는데 먼저 일어나면서 "나 먼저 갈게"라고 말할 자신감도 용기도 부족했다. 그래서 그냥 남들 가는 곳을 뒤따라 쭉 가다 보니 2차도 지나 3차였다. 뒤로 갈수록 사람 수가 적어지면서, 내게 말 걸지 않던 사람들도 내게 말을 걸게 되고 그러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어쩌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 많은 경우에 이런 만남을 가진 후, 다음날 처음 보면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사이로 넘어가는데, 이 날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줬고, 어느새 그들과 같이 걸었고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로 남아있다. 그중 한 친구가 내게 처음 봤을 때 무슨 고양이 같았다고 했다.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았는데 계속 말 걸고 하니 어떤 애인지 점점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먼저 다가가진 못하는 사람이지만, 다가오는 사람들은 막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이 다가왔고,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준 사람들은 나를 알게 됐고, 나를 알고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들은 어느새 친구라는 존재로 내 곁에 남게 되었다.
이런 관계의 시작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어려워졌다.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하면서 국내외 여러 학회를 다녔다. 공동연구가 활발한 요즘 시대에 학회에서의 네트워킹은 필수적이다. 젊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회에 한국 대표 중 한 명으로 뽑혀 참석했었다. 아시아 전역에서 모이는 학회였고, 한국 학생들끼리 많이 모이면서 사람들은 친하게 지냈는데, 그 안에서 나는 또 겉돌았다. 많은 학회를 다녔지만, 나는 단 한 명의 사람과의 연결되지 못했다. 마냥 남이 다가와주길 기다리고, 그들이 나를 알아가면 나를 좋아해 줄 거라는 건 그럴 만큼의 시간이 주어질 때의 얘기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하며 다가갈 필요도 있는 거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이 다가올 만큼의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모임에서 낯선 사람과도 쉽게 말을 걸며 친해지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부럽다. 그들처럼 산다면, 세상이 더 쉬울 것 같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새로 시작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어디든 낯선 곳에 가는 것에 두려움이 생긴다.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조금 더 편하게 실천에 옮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의 타고난 성향이 이러하다고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기엔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며 노력조차 하지 않기에는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거다.
나는 현재 해외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들을 만나도 스몰 톡이 한국보다도 많은 곳이다. 언어적인 어려움을 떠나, 한국어로도 못하는 스몰 톡이기에 처음 이곳에서의 사람과의 만남이 너무 어려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처음 온 사람이니 사람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하지만 내가 조용히 있자 그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가 누군지 알릴 기회는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야만 얻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동료와 함께 탔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내게 "넌 말이 되게 없구나. 이곳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할 거야. 여기 사람들은 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나에게 말을 걸으며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나에게 흥미 있어서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끌어 나간 것은 아닐 거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일종으로 예의를 지키며 나와 대화를 해나가려 한 것이니 나도 그들만큼의 예의를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노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고, 궁금하지 않아도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질문을 하며 애썼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점점 노력이 덜 필요하게 되었다. 역시 처음이 가장 어려운 거다.
나에게 있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노력하면서 조금은 바뀌고 있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니 세상이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거다. 그렇게 나는 사회에 적응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