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에 대해 얘기할 때
타인에게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다던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말하기는커녕 어릴 적에는 병원에 입원당했던 기억만으로도 울기도 했었다. 중학생 때 어느 평범한 하루, 친척 어른 한 분이 집에 와 계셨다. 내게 물으셨다. "넌 어릴 때 병원 갔을 때 어땠니?". 난 깜짝 놀랐고, 그대로 방에 들어가 울었다.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 비밀이었다. 그렇게 쉽게 꺼내기엔 내겐 상처가 컸다. 그렇게 몇 년은 기억도 하지 않으려 애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와 친해지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타인에게 처음 얘기한 것은 아마 성인이 되면서 다시 찾아가던 정신과였던 것 같다. 얘기하면서 눈물이 흘렀고, 의사는 갑 티슈를 건네고 나는 휴지를 뽑아들며 계속 얘기해나갔다.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했던 적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만나고 있던 상대에게다. 나는 내가 과거에 병원에 입원했던 것부터, 현재 이러이러한 상태로 정신과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을 했다. 편견 없이 내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얘기한 후 나는 병원에 다녀와도 어디 다녀왔는지 솔직히 말할 수 있어서 맘이 편해졌었다. 하루는 병원에 다녀왔다고 하니 이런 말을 했다. "병원비 아깝다. 그냥 나한테 얘기해. 내가 들어줄게." 별 것 아닌 한마디였지만, 이 사람에게는 나의 아픔이 온전히 이해받지는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한 두 달 후, 나의 우울과 불안증세가 심해졌다. 가끔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고, 세상에 나가면 그냥 저기 오는 차에 치여서 그냥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 모든 연락을 끊고 방에 며칠을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내고 다시 연구실에 갔고,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한 학기를 휴학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던 연구가 있었고, 휴학은 하더라도 하던 연구가 논문을 내기까지 마무리하고 쉬기로 했다. 지도교수님은 이해심이 많았고 나를 배려해주었다. 나는 휴학을 하고서도 연구실에 계속 나갔다. 가끔 힘이 들 때가 있어 연구실에 늦게 가기도 했는데, 나는 이미 지도교수와 얘기를 다 끝낸 상태니 큰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문제는 지도교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연구실의 선배가 나를 불러냈다. 나는 내 현재 상태에 대해 말하고 휴학했지만 연구실에 나와서 논문 마무리까지 할 거라고 말하자 이 사람이 말했다. 연구실에 폐 끼치는 것 아니냐면서 본인이 그런 상태면 대학원에 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힘이 쫙 빠졌던 것 같다. 나의 상태를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도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프다고 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매몰찰 수도 있구나 싶었다. 세상은 마냥 따뜻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해선 안됐다.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될 때가 있다. 연예인 누군가가 우울증이라던가 공황장애라던가 등의 얘기가 나올 때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보인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하고, 얘기해도 될 사람인가 아닌가를 구분 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내가 스스로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시절에 말이다.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울지 않으면서 내 얘기를 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전보다는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게 되었다. 내가 지닌 아픔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지자, 타인의 생각이나 평가가 그다지 중요치 않게 됐다. 어느샌가 나는 "제가 우울과 불안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 누군가 이것으로 나를 안 좋게 본다면 난 그 사람을 무시하면 그만이다. 나의 아픔에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