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부자의 취미 생활기
일상이 무료했다. 살아가는 게 재미가 없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몰랐다. 왜 이렇게 내 삶은 지루할까 싶었다. 나는 딱히 취미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상에서 즐거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내게 어떠한 즐거움이 생기진 않았다.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즐거움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요즘의 나는 취미 부자다. 나는 요리를 즐기고, 베이스 기타를 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라이브 공연을 보러 다닌다. (더불어 종종 달리기를 하고, 책을 읽는다.) 나의 취미 부자로 가는 길의 시작은 아버지의 우연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즐기던 분이셨다. 언제나 가족밴드의 꿈을 가지고 계시며, 나를 포함한 형제자매들이 악기를 배우고 싶다 하면 언제나 지원을 해주시려 노력하셨었다. 다만 우리 중 누구도 아버지만큼 열정을 가지지 못했고 꾸준히 악기를 배우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하기 직전쯤, 어느 날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기타를 새로 사러 가셨는데, 좋은 베이스 기타가 들어와 있다고. 사주면 쳐보지 않겠느냐고. 아마도 가족밴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베이시스트가 없었기 때문인 듯 하지만, 일단 "좋은" 악기라는 말에 솔깃했고, 굳이 선물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악기를 받았다. 기숙사 방에 악기를 가져다 두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위를 마치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일상에서도 다른 것을 배우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학위과정 동안 계속한다면 뭔가 하나는 더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때, 내 방 한편의 먼지가 쌓여가는 새것이지만 새것이라기엔 2년이나 지난 베이스가 생각났다. 학교 근처가 음악가들의 활동이 활발한 동네기에, 베이스 레슨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더 열심히 듣게 된 것도 있고 악기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공연에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라이브 공연과 페스티벌을 찾아다녔다. 라이브 공연들의 활기와 열정이 좋았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면 그 열기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연습을 안 하던 베이스도, 라이브 공연을 보고 오면 잠시 열정이 지펴져 다시 연습을 시작하게 되기도 하였다.
나는 베이스 기타를 그렇게 열심히 배운 것도 아니다. 한 달 레슨비를 내고, 레슨시간에 찾아가서 조금 치는 게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천천히지만, 실력이 조금씩은 늘었고, 공연을 다니다 보니 어느 날 혼자 치기보다 합주를 해보고 싶어서 함께 할 밴드를 찾아보았다. 오디션을 보고 밴드에 합류했다. 베이시스트는 자리를 찾기가 제법 쉽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기타, 보컬 등에 비해서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밴드계에서 베이스는 모셔가는 자리였다. 그렇게 밴드에 합류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합주를 하면서 매주 만나 연습을 하고 끝나고 회식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음식점들도 매주 찾아가게 되었다. 이때쯤 해외 유투버들의 일상 vlog들을 보곤 했었는데, 그중 what I eat in a day를 좋아했었다. 하루는 합주를 마치고 그날 먹었던 음식을 그림으로 나만의 what I eat in a day를 끄적여보았다. 친구에게 이런 거 그렸다며 카톡을 보냈다. 친구가 좋아했다. 칭찬을 받으니, 어쩐지 더 그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기본기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화실을 찾아보았다. 성인 취미 화실이 많이 나왔다. 등록하고 연필소묘를 일주일에 한 번씩 세 시간을 끄적였다. 딱히 뭘 가르쳐준다는 느낌은 없었다. 따라 그릴 것을 주고는, 내가 혼자 끄적인다. 그러면 마지막에 선생님이 오셔서, 수정해주시는 게 다였다. 세 시간 온전히 집중해서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주는 연습의 효과는 좋았던 것 간다. 연필소묘를 좀 한 후에는 색칠을 하고 싶어졌다. 여러 가지 소재 중, 유화를 해보고 싶었고 유화를 시작했다. 일요일 오전에 화실을 가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집중해서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았다.
유화와는 별개로, 나만의 펜 드로잉은 계속해서 조금씩 끄적였다. 음식을 좋아해서 주로 음식에 대해서 그려왔다. What I eat in a day를 그리는데, 그리다 보니 소재가 고갈되었다. 새로운 음식을 먹은 게 없으니, 새로운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로운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식당들을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맛보고, 이를 통해 음식과 요리에 대한 경험을 넓어지면서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요리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해오곤 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미 집에 손님이 오면 과일을 깎아 대접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자취를 했었는데, 이때도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기도 했었다. 대학원에 있으면서 종종 언니네 집에 찾아가곤 했다. 언니네 집에 가면 내가 요리를 했다. 육아로 지친 언니를 좀 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요리하는 게 즐거웠던 이유가 더 컸을 거다. 여전히 나는 요리하기를 즐긴다.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레시피 없이도 원하는 맛들은 어느 정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기를 멈추고 적당히 한다고 했다. 어릴 때에는 색칠할 때 선 밖으로 나가면 울었던 나는 완벽주의자였기에 잘하려 하면 오히려 나는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즐길 수 없었다. 나의 취미생활의 모토는 "애쓰지 말고 그냥 즐기자"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도 잘 그리지 않고, 바로 펜으로 선을 그어버리곤 했다. 망치면 망치는 거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요리도 모든 재료가 다 갖춰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든다. 나는 손님에게 팔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집에서 한 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 집밥을 만드는 거니까.
나는 이러한 여러 취미들을 동시에 하지는 않는다. 일단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시기마다 무언가가 지루한 시점이 오기 때문이다. 어쩔 때는 하루에 그림을 세네 점씩 그리며 한 달 정도 그림에만 몰두하며 즐기다가 갑자기 그게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재미가 없다. 그러면 잠시 그림에서 손을 놓고는 다른 취미를 다시 즐긴다. 사이클처럼 돌고 돌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시점이 온다. 그러면 다시 그린다. 이렇게 내 취미들은 나와 함께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 잘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이것들은 온전히 나의 "취미"니까. 내가 삶을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