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가 아닌 타협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였다고 한다. 그림에 색칠을 하다가 선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나는 울었다고 한다. 세상에 완벽이란 게 있을까? 나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봤다. 내가 제출한 답안지가 맘에 들지 않았다. 망했다. 시험을 보고 나오니 친구들이 어땠냐며 얘기를 한다. 한 친구가 말한다. “쉽던데?” 중간고사 점수를 공지했다며 확인하라 하는데 어차피 망한 거 뭐하러 보나 싶어 보지 않는다. 기말고사까지 보고 학기가 끝난다. 성적이 나온다. 이상하다. 잘 봤다고 한 친구들보다도 내가 성적이 높게 나왔다. 뒤늦게 중간고사 성적을 확인해보니 내가 전체 3등이다. 기말은 1등이다. 이상하다. 주변애들 중 가장 잘 봤음에도 나 혼자만 망했다고 생각하며 좌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A+을 받아도 나는 매번 완벽하지 못한 내 답안지에 실망할 뿐이다. 난 그런 사람인 거다.
하지만 내가 세우는 기준들을 나는 이룰 수 없었고 나는 매번 실망만 하고 좌절할 뿐이었다. 나는 내 분수를 모르고 너무 높은 목표만을 바라본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완벽을 꿈꾸지만 난 이를 실현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하거나 노력하기를 그만두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적당히”하자-주의의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다면, 대체 노력이 무슨 의미 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고, 적당히 하고 그저 결과를 기다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지만, 최선을 다하던 이전만큼 좌절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루지 못할 이상을 꿈꾸진 않으니까.
누군가는 나를 질책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냐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애쓰지만 이루지 못하는 결과로 인한 좌절을 계속 이겨낼 만큼 내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을 영화라고 해도 내 삶도 시작과 끝이 있을 영화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다. 별점 1개짜리 영화도 영화는 영화라면 어떠한 삶이라도 한 인간의 삶이다. 여기에 정해진 스크립트는 없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바꾸면 되는 거다.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바꾸고 새로운 기준에 나를 맞추면 되는 거다. 나는 “완벽”이란 나의 기준을 “적당히”라고 변경하고 살아가는 거다. 이것은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이다. 이게 나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