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에 관하여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베이스 기타에 대해 얘기해보자. 나는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 딱히 음악적 재능도 있지 않기 때문에 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거다. 하지만 난 크게 애쓰지 않았다. 베이스 레슨을 등록하고, 1주일에 한번 한 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어쩔 때는 일주일 동안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아 지난 레슨에 했던 내용을 다시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우연히, 레슨 초창기에 녹음해놨던 음원을 듣게 되었다. 지금과 달랐다.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걸음도 계속하다 보니 얼떨결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나 보다고 생각되었다. 또 다른 취미인 그림도 그렇다. 일 년에 한 두 달 정도 집중해서 그리다가 거의 일 년 뒤에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는데, 몇 년이 지나서 예전 그림과 비교해보니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사람이 계속하는데 정말로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건가 싶기도 했다. 계속하면, 결국엔 조금은 나아지는 거다. 어차피 취미생활이니 조급할 필요도 없고 그냥 계속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하지만 삶에서 하는 일이 모두 취미는 아니지 않은가. 나도 전공이 있고 직업이 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내 이름 앞에 Dr나 Ph.D 등을 붙이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학위를 받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똑똑하다는 자부심 같은 게 들지 않아서다. 스스로 박사라 불릴 만큼 이 분야의 지식을 쌓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학위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학생들의 발표들을 보다 보니, 발표에 참고한 논문들을 이미 내가 다 읽어보았던 것들이고 그들의 발표 안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나 자신이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몇 년 동안 읽어왔던 논문들이 어느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평가하던 나 자신보다 나는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부끄러워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 나는 왜 맨날 이 상태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보낸 시간이 많았다. 나는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었다. 마치 매일 보는 사람이 살이 쪘는지 안 쪘는지 모르는 것처럼 매일 보는 나 자신이기에 나 자신의 변화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전과 달랐다. 나는 그대로이지 않았다. 나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계속되는 제자리걸음, 꾸준함이 지치지 않고 내가 나아갈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