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과 호수
어느 순간부터 내 친구는 내 옆에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언제부터 친해졌냐 묻는다면, 기억이 나지 않아 대답하지 못하겠다. 고등학교 3년을 제외하고는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적이 없어 일 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데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다. 나는 누구에게도 부탁 같은 걸 잘 못하는데, 이 친구에게는 "너네 집에서 하루만 자도 돼?"라고 부탁하며 친구네 지역에 볼일이 있으면 친구네 집에서 머물기도 한다. 내가 전화를 선호하지 않아 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고 메신저로만 연락을 하는데도 만나서 대화하면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레 흐르는 게 신기하다.
우리가 서로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취향이 비슷해서 인 것 같다.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악 많은 면에서 우리는 통하는 게 많다. 새로운 노래를 듣고 좋아서 링크를 보내면 상대는 언제나 좋아한다. 귀여운 동물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동물을 보면 서로 디엠으로 보내곤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콘서트와 뮤직 페스티벌들을 함께 다녔다. 콘서트 메이트는 항상 이 친구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거의 다 겹치다 보니, 내가 가고 싶은 곳이면 친구도 가고 싶어 했다. 시간만 맞으면 서로가 항상 ok였다. 비슷한 취향으로 우리가 서로 세상을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던 일화가 있다. 둘이 함께 전주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크게 특별한 것은 아닌데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그걸 혼자 보고 있는데 친구가 옆에서 "저거.."라고 말을 하는 순간 친구도 나와 같은 것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했다. 그러자 친구가 놀라면 말했다. "저 얘긴지 어떻게 알았어?" 우린 이런 순간이 종종 있었다.
내 친구의 성은 강인데, 친한 사람 중 성이 강인 사람은 이 친구뿐이라 나는 그냥 "강"이라 부르곤 한다. 아니면 이 친구 이름의 끝 글자를 부른다. 내 이름은 조금 특이한데, 많은 사람들이 별명으로 부르지만 이 친구는 내 이름이 좋은 건지 정직하게 풀네임으로 날 잘 부른다. 우리를 나타내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강과 호수"이다. 어느 때처럼 함께 콘서트를 봤던 날이었다. 공연을 보고는 주변을 그냥 거닐며 구경하다가 금속에 문구를 새겨서 파는 가게가 보였다. 이런저런 문구들이 궁금해 뭐가 있나 함께 창 너무 구경을 하는데, 그 가운데 우리 눈을 사로잡는 "나는 강, 너는 호수"가 있었다. 서로를 보며 "이거 우리잖아"라고 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를 "강과 호수"라 부르게 되었다.
함께 했던 순간들이 많은데도 우리가 둘이서 식당에서 제대로 음식을 사 먹은 적이 별로 없다. 신기하리만치 말이다. 고등학생 때는 급식을 먹으니 딱히 식당을 갈 일이 없었다고 하자. 그 이후에는 공연이 있어 만나면 공연장 근처에서 간단하게 먹거나 페스티벌 푸드 코너에서 먹으니 제대로 된 식사라 하기 어렵다. 친구네 집에 가게 되면 친구가 집밥을 차려주거나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장을 봐서 요리를 해줬다. 우리 사이에 많은 게 있지만 우리가 공유한 맛집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한 음식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두부 두루치기다. 난 대전에서 몇 년을 살았음에도 두부 두루치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SNS가 생기고 사람들이 맛집을 다니며 포스팅을 하면서 대전에 두부 두루치기가 유명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친구는 이미 두부 두루치기를 알고 있었기에 본인이 아는 두부 두루치기 맛집에 날 데리고 갔다. 처음 맛본 두부 두루치기였다. 그러니 내게 두부 두루치기하면 내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에 와서 일 년이 지나고서야 프랑스에서 처음 공원에 가서 피크닉을 했다. 돗자리 대신 담요를 바닥에 깔고 싸 온 도시락을 먹고는 따스한 햇살아래 낮잠을 즐기다 눈을 뜬 순간 친구가 생각났다. 많은 페스티벌을 다니며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낮 시간에 잔잔한 노래들을 들으며 낮잠을 즐기던 그때의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러다 너무 오랫동안 친구에게 전화하지 않았음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오랫동안 전화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사과하고는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언제 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한국에 간다면 친구와 이제는 더 많은 음식들을 함께 하고 싶다. 지금은 두부 두루치기 하나지만 "강과 호수" 사이에 더 많은 음식들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