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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Aug 27. 2023

아버지는 콩나물 귀신

아버지는 콩나물을 좋아하신다

 나는 아버지처럼 콩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함께 식사하실 때 콩나물 반찬은 보통의 반찬 접시가 아닌 커다란 대접에 나오기도 했다. 대식가 먹방 유튜버들의 짜장면 한 입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아버지의 콩나물 먹방이 그런 모습이다. 반찬 그릇에 있는 콩나물 무침 같은 것은 그저 한 젓가락, 한 입으로 끝나버린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대식가이거나 식사 속도가 빠른 사람인 것도 아니다. 오직 콩나물에 대해서만 그렇다. 그러니 보고 있으면 더욱 신기하다. 콩나물이 들어간 음식에서 콩나물은 뭐든 잘 드시지만 가장 좋아하시는 건 우리 엄마표 콩나물 볶음이다. 보통의 빨간 콩나물 무침과 이 데친 콩나물에 양념을 버무려 주는 거라면, 우리 엄마의 콩나물 볶음은 데쳐낸 콩나물에 양념을 해서 한번 더 조려내는 거다. 그러니 따뜻하게 먹는 반찬이다. 다른 곳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우리 엄마만의 시그니쳐 요리라 하겠다.


해외에 나오니 숙주나물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콩나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콩나물은 한국에서만 먹는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다른 나라들은 거의 숙주만 먹는다고 한다. 언제나처럼 아시아마켓을 둘러보다가 한국에서 보지 못한 물건을 처음으로 봤다. 바로 콩나물 통조림이다. 한국에서는 국민반찬의 재료로 가격도 저렴하니 굳이 콩나물을 통조림으로 구매할 사람이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있는 여기는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영어와 불어로 콩나물에 대해 적혀있고, 무엇보다 한글로 크게 "콩나물"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한국 회사 제품 같았다. 너무 신기한 마음에 한 캔을 사 왔다. 집에 와서는 콩나물 브랜드인 "Wang Korea"에 대해 검색해 본다. 서울에서 설립되었고, 1970년대부터 한국 음식들을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회사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들이 콩나물까지 수출해 줘서 내가 프랑스에서 콩나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이 중요하지 않은가. 어쩐지 통조림이니 물컹한 식감으로 괜히 하나도 못 먹고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귀하게 얻은 콩나물이니 콩나물로 제대로 된 한 끼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요리가 냉장고 속 소고기를 이용한 콩불이었다. 콩나물 통조림을 열어본다. 물속에 콩나물이 담겨있다. 콩불에 넣어 양념을 입히기 전에 콩나물 한 줄기를 건져내 한 번 씹어본다. 어? 제법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나쁘지 않다. 잘 만든 제품이다. 콩불을 만들어서 맛본다. 매콤하게 양념된 고기와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이 잘 어울린다. 맛있는 요리다. 콩나물 한 캔은 콩불 1인분 요리할 정도의 양이었다. 아버지가 드신 다면 두 젓가락이면 끝날 양이다 싶었다.

연구소에는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제법 오래된 인연이다. 그 친구에게 콩나물 통조림을 사서 콩불을 해 먹었다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가는 아시아마켓에 신선한 콩나물을 판다고 알려줬다. 반가운 마음에 그날 퇴근 후 바로 그 가게를 찾아갔다. 정말로 채소 냉장고에 콩나물이 투명한 봉지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프랑스에서 신선한 콩나물을 구할 수 있다니 말이다. 사온 콩나물 한 봉지를 귀한 만큼 신선할 때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로 요리해 먹기로 한다. 콩불은 바로 전날 먹었으니, 이제는 다른 요리를 해야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엄마표 콩나물 볶음도 만들고, 콩나물을 데치는 김에 콩나물 국까지 끓이기로 한다.

엄마의 콩나물 볶음은 우리 엄마의 시그니처 반찬이라 하겠다. 어릴 적부터 이 반찬을 먹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보통의 차가운 빨간 콩나물 무침은 내겐 언제나 어색한 느낌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일을 하셔서 집에는 언니, 오빠, 나까지 남매 셋을 돌보기 위한 가사도우미 분이 계셨다. 오랫동안 지내셨던 분은 우리 엄마의 콩나물 볶음을 알아서 그 반찬을 해주시곤 했는데, 어느 날 새로운 분이 오시고는 보통의 콩나물 무침이 나와서 깨작거리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엄마의 콩나물 볶음은 오직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을 먹을 때만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집을 떠나서 살게 되고는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바쁘셔서 집에서조차 식사를 잘하는 일이 없던 아버지가 콩나물 반찬을 그렇게 많이 드셨던 건 아닐까? 오늘 아니면 언제 먹냐는 심정으로 말이다.


엄마가 콩나물 볶음을 하시던 것을 어깨너머로 여러 번 보아서 들어가는 재료는 대충 알고 있다. 한 번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귀한 콩나물로 말이다. 콩나물 볶음을 할 때 엄마는 항상 콩나물 국도 함께 끓이시곤 했었다. 엄마는 깔끔하게 콩나물 만으로 국물을 내셨지만, 나는 조금 더 진한 육수를 먹고자 멸치와 다시마로 먼저 육수를 내고는 거기에 콩나물을 넣어 끓여준다. 그런 후, 콩나물을 절반은 볶음용으로 건져내 준다. 콩나물 국을 위해서는 콩나물을 더 끓여준다. 그런 후 국에는 다진 마늘을 넣어주고 소금 간을 해서 깔끔한 맛으로 마무리한다. 이제 볶음을 해야 한다. 엄마가 하시던 것을 되새겨보면, 먼저 팬에 데친 콩나물을 넣고 거기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는다. 그런 후, 콩나물 숨이 조금 더 죽을 때까지 볶아내 준다. 그런 후 마지막에 깨를 뿌려주면 끝이다. 이게 전부야? 하겠지만 맛보면 정말 맛있다. 간단한 재료지만 이 콩나물 볶음만으로도 밥 한 끼는 거뜬한 정말 맛깔난 반찬이다. 처음 만들어 봤기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맛을 보았다. 콩나물 볶음을 만들던 엄마가 생각나고, 한 두 젓가락에 이 반찬을 거덜낼 아버지도 생각난다. 처음이지만 성공이다.

콩나물 볶음에 콩난물 국에 콩나물 잔치인 날이다. 콩나물을 질리도록 먹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이 저녁을 먹는다면 아버지는 나처럼 질려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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