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칼국수를 좋아하신다
엄마는 칼국수를 좋아하신다. 내가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도 칼국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의 고향은 충청도의 해안가이다. 해안가이다 보니 해산물이 풍족해서 어릴 적부터 신선한 해산물을 맘껏 먹으며 자라왔다. 그런 내 고향에서의 칼국수는 기본이 해물칼국수다. 커서 다른 지역에서 사골칼국수나 들깨칼국수 같은 다른 칼국수를 처음 맛봤었다. 그런 해물 칼국수를 엄마와 자주 먹으러 가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언제나 해물칼국수를 주문한다. 그러면 먼저 열무김치와 보리밥이 애피타이저처럼 나온다.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얹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쓱쓱 비벼 한 입, 두 입 먹고 있으면 큰 솥 같은 냄비에 조개가 한가득 담긴 칼국수가 나온다. 바로 앞에서 끓여져 가는 칼국수를 지켜보며 보리비빔밥을 비운다. 칼국수가 익으면 조개가 넘치도록 많아서 하나하나 까먹으며 칼국수를 맛보곤 했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고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항상 엄마 차를 타고 저녁이나 주말에 먹으러 가던 곳이었는데, 항상 함께 가던 곳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우리 모두 학교 때문에 집에 떠나게 되면서 엄마가 혼자 지내게 되셨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타지에 계셨다.) 어느 날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혼자 있으니 칼국수를 먹으러 갈 사람이 없다고. 혼자라도 가시면 되지 않냐 했더니 칼국수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혼자라서 칼국수를 못 먹는다고 슬퍼하는 엄마가 귀여우면서도 함께 하지 못해 죄송했다. 그 후에 고향집에 가서는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함께 가니 엄마가 신나 하셨다. 보리비빔밥을 먹으면서도 열무가 너무 잘 익었다며 잘 드셨고, 칼국수도 언제나처럼 잘 드시며 김치도 리필해서 드셨다. 서울에서는 이렇게 해물이 풍부한 해물 칼국수를 맛보기 어려워서 나도 오래간만에 해물칼국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원래도 칼국수 하면 엄마가 생각났지만, 엄마가 칼국수를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고 했던 말을 들은 이후로는 칼국수 집만 가면 엄마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학교 근처에 유명한 칼국수 집이 있었다. 언제 가도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이었다. 이곳은 사골칼국수로 유명했는데, 사골 육수에 특별할 것 없이 단출하게 채 썬 호박과 당근 정도만 올라가 있는 게 특징적이었다. 내가 이 집에서 좋아하는 것은 사시사철 변함없는 김치였다. 항상 배추 겉절이와 백김치를 줬는데 두 김치를 번갈아가며 먹으며 부드러운 칼국수와 국물을 맛보면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칼국수와 김치 모두 엄마가 너무나도 좋아하실 맛이라서 언제 한 번 서울에 오시면 함께 와야지 했는데, 생각만 하고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렇게 먼 프랑스로 와버렸다. 아직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내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언제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 더 함께 칼국수를 먹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맘이 든다.
퇴근길에 아시아마켓이 있다. 종종 퇴근길에 들러 장을 보며 그날 메뉴를 결정하곤 하는데, 이 날은 칼국수 면이 눈에 띄었다. 보자마자 엄마 생각이 났다. 한동안 전화를 못 드렸단 생각이 났다. 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저녁으로 먹을까 하는 생각에 칼국수면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칼국수를 먹으려니 겉절이도 곁들여야지 싶어 배추도 하나 꺼내든다. 칼국수 육수를 엄마가 좋아하시는 해물칼국수로 하고 싶지만, 해물을 이것저것 사자니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혼자 먹는 저녁을 위해 돈을 너무 쓰는 건 조금 자제하게 된다. 엄마에게 사드리고 싶었지만 못 사드렸던 대학원 근처 칼국수집의 고명처럼 간단히 호박, 당근 정도를 곁들이고 사골국물이 없으니 아쉬운 대로 멸치, 다시마 육수로라도 만들기로 한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는 끓인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낸다. 그런 후, 멸치만 있는 상태로 20분가량 국물을 더 낸다. 육수를 내는 동안 겉절이를 준비한다.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고춧가루가 있다. 조금 맵긴 하지만 이곳 아시아마켓의 중국산 고춧가루보다는 확실히 맛이 좋다. 엄마의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 액젓, 새우젓, 설탕, 쪽파를 넣고는 양념을 만들어준다. 배추를 적당한 크기로 듬성듬성 잘라주고는 양념에 버무려 겉절이를 완성한다. 그 사이 육수가 다 끓었다. 멸치를 건져내고 준비된 육수에 칼국수 면을 넣는다. 생면이 아닌 건면이다. 국물을 깔끔하게 하려면 한 번 끓여낸 면을 건져내서 육수에 넣어야겠지만, 나는 전분이 풀어져서 약간은 걸쭉하고 크리미 하게 만들어진 국물을 원하였기에 육수에 바로 면을 넣었다. 고명을 따로 볶아서 나중에 얹어주면 더 예쁘겠지만, 설거지를 더 하고 싶지 않아서 면이 담긴 육수에 채선 양파, 당근, 호박을 모두 넣고 함께 끓여주었다. 간은 국간장과 액젓으로 해준다. 국간장을 넣을 때 액젓을 소량 함께 넣어주면 감칠맛이 더 올라와서 훨씬 맛있다.
완성된 칼국수를 그릇에 담는다. 국물이 걸쭉하니 진하게 나왔다. 만족스럽다. 겉절이도 먹을 만큼 그릇에 옮겨 담고는 상을 차린다. 맛본다. 이 정도 맛이면 엄마도 좋아하실 것 같다. 칼국수를 먹으며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 생각을 하니 전화를 하고 싶지만 시차 때문에 전화를 드릴 수가 없다. 이번 주에는 꼭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카카오톡에 저녁 사진을 찍어서 엄마에게 보낸다. 오늘은 칼국수를 먹었다고. 나는 잘해 먹고 잘 지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