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통한 걸까,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
난 친언니와 매우 가깝다. 어릴 적에도 그다지 싸운 적이 없다. 내가 좋은 동생이라서기보단 언니가 좋은 언니라서 일 것이다. 언니는 일본인 형부와 결혼을 하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아 예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에 오기 직전 서울에 있던 방을 빼고 언니네 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출국이 조금씩 미뤄지면서 원래 한 달 머물고 떠나려던 계획에서 시간이 미뤄지고 미뤄져 거의 세 달을 머물렀다. 그렇게 머물면서도 출근, 등교하는 언니네 가족들을 위해 내가 아침, 점심, 저녁을 차려주곤 했다. 원래도 요리를 좋아했지만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하던 요리를 실컷 할 수 있어서 난 그 몇 달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언니네 가족은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형부는 일본인이라 보통의 한국인보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언니가 매운 것을 잘 먹는 것도 아님에도 워낙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조금의 매운맛도 먹질 못하니 언니네 집에서는 빨간 요리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도 간장소스와 매콤한 버전으로 두 가지를 만들면 다른 가족들은 간장은 나와 언니는 매콤한 요리를 먹곤 했다. 언니가 장도 모두 봐줬기에 요리 재료를 내 돈으로 살 필요도 없어서 맘껏 요리하기에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언니네 집에는 보통 김치가 없다는 것이다. 김치를 엄마가 보내주셔도 먹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항상 남고 나중에 버리기도 했나 보다. 그래서인지 김치를 안 받고 먹고 싶을 때마다 언니가 소량씩 주문해 먹으면서 언니네 집에서는 김치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몇 주를 김치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어느 날 김치찌개가 굉장히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김치찌개를 저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마트에서 김치 한 봉지를 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말했다. "어서 와. 내가 김치찌개 주문했어. 저녁 그걸로 먹자." 너무 신기했다. 내가 김치찌개를 생각한 날 언니도 김치찌개를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날은 김치찌개뿐만 아니라 다른 요리도 가끔 있었다. 내가 문득, '아 짜장면 좀 먹고 싶은데'라고 아침에 생각했는데 점심에 언니가 "우리 탕수육이랑 짜장면 시켜 먹을까?"라고 말한 날도 있었고 이런 날들이 종종 있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도 내가 "나 오늘 XXX 먹어"하면 언니도 "어? 나도 지금 그거 먹는데." 하기도 했다.
우리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텔레파시가 통할리는 없다. 아무래도 언니와는 취향이 매우 비슷하고 대학교 전까지는 계속 함께 살며 비슷한 생활을 해왔기에, 날씨나 기분에 따라먹는 같은 요리를 먹으며 자라왔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떤 날씨에는 이런 요리-라는 생각이 우리 둘이 서로 같은 게 아닐까? 취향면에서 비슷한 것은 커피에서도 있다. 언니와 나 둘 다 기본적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어쩌다가 아이스라테, 에너지가 필요하면 바닐라라테를 마시고 겨울이 오면 꼭 차이티라테를 마신다. 내가 먹어보고 맛있어서 추천하면 언니도 맛있어한다. 둘이 음식 취향이 많이도 닮았다. 그렇기에 언니를 위한 요리를 하는 건 쉽다. 내가 맛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워진 순간이, 나는 새우를 좋아하는데 몇 년 전 갑자기 언니가 새우 알레르기가 생겼다. 이제 더 이상 새우로 서로가 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치로 언니와 통한 날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김치찌개는 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언니는 예전부터 굉장히 자유로운 요리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좀 더 정석대로 요리를 하는 타입이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자기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와 참치 둘 다 넣기도 한다고 말이다. 돼지고기나 참치 하나씩 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김치찌개에 둘 다 넣어버리다니. 이 얼마나 소소한 사치인가. 그런 언니의 요리법에 김치찌개하면 언니가 더 생각나게 된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에는 주로 아시아마켓에서 김치를 사 먹었다. 종가 X 배추김치 반포기가 대략 6유로쯤 한다. 결코 싸지 않다. 김치찌개를 위해서 이 한 봉지를 다 써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 먹는 김치찌개 1인분이 거의 20유로이기 때문에 직접 요리하는 게 저렴하다. 언니는 돼지고기와 참치를 둘 다 넣는다지만, 나는 김치찌개로 사치를 부리진 않는다. 돼지고기 또는 참치 한 가지만 넣는다. 하지만 주로 먹는 건 역시 돼지고기다. 돼지고기에서도 주로 삼겹살을 선택한다. 김치찌개는 어려울 게 없다. 김치가 잘 익은 상태이면 맛은 보장된다. 나는 먼저 김치와 고기를 살짝 볶아주다가 거기에 물을 넣고 팔팔 끓여준다. 그런 후, 맛을 보고 너무 시다면 설탕을 살짝 넣어 신 맛을 잡아준다. 난 김치찌개는 오래 푹 끓여 배추김치의 배추가 완전히 물러진 상태를 좋아한다. 갓 끓여 아직 설겅거리는 식감의 김치찌개는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은 이렇게 기본 김치찌개를 끓이지만 가끔은 여기에 당면을 추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면을 넣으면 국물을 너무 흡수해 버려서 국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곤 한다. 어쩔 땐 당면을 너무 넣어서 김치찌개가 김치찜으로 변신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맛은 있으니 실패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토핑이라면 순두부이다. 종종 두부를 넣곤 했는데, 예전에 한 식당에서 김치찌개에 순두부를 넣어주더라. 부들부들한 순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맛 좋은 김치찌개 국물에 담가지니 더 맛있더라. 하지만 순두부를 항상 구하진 못해 보통 두부를 넣고 있다.
내가 프랑스에 오고 반년쯤 지나 언니와 언니가족 모두가 함께 여름휴가로 나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겠지만 나를 보기 위해 프랑스로 정해서 찾아왔었다. 나도 여름휴가를 내고는 언니네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오니,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적막감이 조금 느껴졌다. 언니가 생각나기에 그날 저녁, 김치찌개를 요리했다. 따뜻한 김치찌개를 먹으니 조금은 나 혼자지만 포근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나는 요리를 하며 함께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외로움을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