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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l 25. 2024

“그래도”가 위안이 될 때

그래도 

[부사] 뒤 문장의 내용이 앞 문장을 양보한 사실과는 상관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속 부사.




가끔 우울해질 때면 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일어날 수 없는 무거운 몸은 침대에 머물고 그저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에 잠기곤 한다. 그나마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면, “그래도”가 떠오르고 더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게 된다. 


-요즘 연구가 정말 안된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각종 연구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는데, 내가 가진 것을 보여줄 생각으로 활기로 가득했는데… 하나 둘 실제 실험을 진행해 보니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하는 것도 생기고, 내 예상보다 더디고 이런 과정들이 지치게 한다. 연구원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다시 떨어진다. 

“그래도” 올해 펠로우십을 받아서 연구비 걱정도 덜었고, 내가 완전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내 거취는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조금 더 버티며 연구를 해 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건강이 안 좋다. 스스로를 방치했고, 정신 차려보니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몸, 거의 덩이리가 되었다. 이런 몸으로 건강할 리가 없다. 여기저기 몸이 안 좋은 시그널을 보낸다. 운동을 하려 해도 몸이 무거워 쉽지가 않고, 일단 너무 움직이지 않았다 보니 다시 움직임 속에서 활력과 상쾌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다리가 있지 않은가.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이렇게 다시 스스로를 관리하기로 맘먹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더 나빠지진 않겠지. 좋아질 일만 남았겠지. 


-사람과의 소통이 너무 부족하다. 혼자 사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소통이 있어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갈 때의 얘기인데,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 오히려 사람과의 만남이 제한적인 느낌이다. 지금도 이런데 나이가 들면 더더욱 혼자가 되어 정말 고립되는 삶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마음을 먹으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곳곳에 있지 않은가. 그러니 원하는 모임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활력을 얻어보자. 프랑스보다 한국의 서울에서 그런 기회는 훨씬 많지 않은가.  


-난 가난하다. 물론 한 달 한 달 살아가기는 문제가 없다. 딱히 물욕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 친구의 결혼식에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내가 너무 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재테크며, 결혼, 출산, 육아 등 사회 속에서 자리 잡고 보다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한 채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만 예전 그대로의 모습 같았다. 누군가의 “하나도 안 변했다”가 칭찬이 아니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이런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다 보니 이래도 괜찮은 건가 하는 걱정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 만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의 행복이 있겠지. 그러니 나도 그들과 다른 나만의 행복이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란 걸 다시 되새기면서, 내가 생각한 나의 삶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운지, 그것만 생각하자. 


-자기 혐오감이 들 때가 있다. 어느 날은 그냥 내가 나인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하루아침에 온전히 사라졌을 리가 없다. 나의 자기혐오는 더 나아가 나를 닮은 자식, 자손에 대한 혐오감으로 까지 번져서 나는 출산에 대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나 닮은 자식”을 갖는 게 꿈이라는데 나에게는 생각만으로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조차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겠냐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냥 내가 가진 모든 게 싫다는 생각에 잠기는 날들이 있다.

“그래도”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에 있으면서도 많은 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나를 왜? 대체 왜? 뭐 때문에? 좋아해 주는지에 대한 의구심들이 계속해서 들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냥 내가 나인 것을 좋아해 줬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 나 스스로도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제도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가기가 어려웠던 날이었다. 예전에 한없이 우울하던 시절에는 그저 부정적이고, 어둡고, 회의적인 모든 생각이 안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곤 했다. 이런 날이 몇 주고 몇 달이고 지속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는 그렇게 한없이 어둡게 밑바닥으로 생각이 가라앉진 않는다. 어떤 생각에 잠기더라도 “그래도”가 나에게 위안을 준다. “그래도” 이러저러하니 나는 괜찮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니 다시 일어서서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바탕으로 사고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가 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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