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의 내 생각들 2017.02
----------------------------------------
나는 생각이 조금 느린 편이다. 사소한 말다툼이건 면접이건 당시에 꼭 해야했을 말이 그것이 다 지나간 후에야 생각나곤 한다. 이런 문제는 비단 나에게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주변에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일이 끝난 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거기에 충분히 잘 분명 누구보다 뛰어나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풍토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보다 그 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지나치게 비대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개인을 탓한다. 그들이 이런 주장에 흔히 사용하는 논리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바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대해 예측하지 못했기다는 이유로, 느리지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는 숙고를 통해 나온 생각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우리 사회는 '순발력'과 '즉흥성'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빠르다. 그렇게 때문에 제대로 된 성찰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빠르게 스쳐지나감 속에 여러가지 폐악들이 그대로 방치된다. 멈춤 그리고 느림의 가치에 대해서 여러 책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피력되곤 한다. 그것들은 우리와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필수적이다. 이런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어떤 이와 말싸움을 했을 때, 당시에 쏟아내지 못했던 말을 나중에 쏟아낸다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매도하지 말자. 그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심과 대범이라는 용어는 자기 자신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정의(定義)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선한 것이다. 그것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우리의 삶의 밑바탕이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다. 이러한 도덕성에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가. 우리는 순간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풍토에서 보자면 약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배려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잠시 수업시간에 스쳐지나간 단어일 뿐인 도덕이라는 말이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비로소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