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을까?
지원부터 채용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합격 발표를 듣고, 정해진 날에 출근을 했다.
카페 일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카페 일에 대한 어떤 환상같은게 있었겠지만,
대학 시절부터 주말 카페알바를 수 년 간 해왔었기 때문에 카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카페일을 시작하면 초반엔 주문을 받고, 열심히 청소를 한다.
스타벅스는 내가 일해본 카페 중에 가장 체계적인 곳이었다. 매 30분마다 무엇을 해야할지 완벽하게 짜여진 스케쥴이 있고, 배우고 익히기 위한 많은 교육들이 있다.
초반 한 달간은 정말로 좋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불규칙한 스케쥴 정도 밖에 없었다.
당연하다. 내가 일을 구한 시기는 코로나가 한창 널리 퍼져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냥 다섯시간 정도, 청소를 하고 서 있다 간다. 손님이라곤 별로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가 전부였기에 사람이 많지 않은 오후에만 근무했다. 계속 머리를 혹사하던 생활에서 벗어나서,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간만에 하니 무언가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좋은 시간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조금씩 카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나도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평화로운 생활은 금새 끝났다. 스타벅스는 정말로 바쁘다. 내가 일하던 매장은 그렇게 잘 되는 매장도 아니었는데, 참 바빴다. 정신 없이 일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30분마다 짜여진 역할들은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숙련도가 올라가 어느 시간에든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스케쥴은 더욱 더 불규칙해졌다. 금새 내가 원하던 여유로운 생활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돈을 벌기를 원하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바라는 건 욕심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스타벅스의 월급을 보면...
내가 꿈꿨던 생활은 5시간의 짧지만 굵은 노동과 나머지 시간의 여유였는데, 굵은 노동은 맞았지만 나머지 시간의 여유(?)는 생각보다 챙기기 어려웠다. 일단 일이 끝나고 나면 진이 빠졌고(나는 당시에 10km정도는 45분 내에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갈 수록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이어졌다.
지친 사람은 예민해진다.
여유로울 때에도 쉽게 짜증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좋은 환경이 사람을 여유를 갖게 만들고, 그 여유가 다시 좋은 환경을 만드는 선순환을 낳는다. 여유가 없는 환경은 정확히 그 반대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당시에 나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매일 생각만하다가 슬슬 실천을 해보게 되었다. 모아둔 돈으로 한 달 정도 시범으로 돌려본 프로그램은 코로나와 함께 엄청나게 성장하는 코스피와 함께 내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수익률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내 스타벅스 생활은 만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굳이 이 돈을 받으려고 이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비트코인이 엄청나게 오르기 시작했다. 투자에 슬슬 눈을 뜨기 시작했던 나에게 이 시장은 굉장한 기회로 느껴졌고, 주식과 코인을 배분해 조금씩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전업투자자 생활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