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한 남자의 삶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김영하 작가의 책읽는 시간을 통해 읽혀진 기억이 있는 책이다. 그간 곁에 두었던 무거운 책들에서 벗어나 깊이 있으면서 유쾌할 것 같은 책을 찾다가 택하게 되었다.
보통은 허삼관 매혈기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삶과 투쟁 정도로 생각할 것이고 이를 통해서 희생이나 가족애 같은 것들의 가치에 대해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주변의 허삼관을 떠올려 볼 것이다. 보통을 부모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자라 대가리 같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꺼히 자기 자신을 던지는 진정으로 이기적인 한 남자를 보았다.
허삼관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할 줄 아는 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피)를 판 돈을 헛으로 쓰지 않는다. 그는 절대 바보같이 순진한 이타적인 인간이 아니다. 아니 그는 분명히 이타적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타적이다.
첫 번째 매혈을 통해 그는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그를 통해 행복을 얻는다. 자신의 첫째 아들인줄 알았던 일락이 남의 자식인줄 알았을 때, 허옥란을 용서하지 않고 일락을 다시 거두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러한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통은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이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바보같이 보이지만 허삼관의 행동들은 대부분 현명했다. 임분방과 잠을 잔 행위 조차 현명했다. 이 행동은 허삼관과 허옥란의 위치를 다시 대등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의 행복한 관계는 평등한 상태 속에 있을 때 이루어진다. 허삼관이라는 인물은 본능적으로 이를 알았던 것이다. 하소용을 살리라고 일락이를 보내는 행위 또한 그렇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분명히 생채기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허삼관은 일락을 보낸 것이다. 정말로 바보같은 행동같아 보이는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매혈을 한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허삼관은 진심으로 일락을 사랑하고 일락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지 않는 기억은 분명히 이후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삼관은 피를 팔았다.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이 반대는 아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하여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부정적인 일들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국가나 종교같은 것을 더 위할 때 발생한다. 현대인들의 과잉소비의 바탕이 되는 허영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세상이 이상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한 몰이해의 탓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양주라는 사상가에게 어떤이가 이 혼란스러운 세상이 평화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물었다. 양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답이 춘추전국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직하다.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한 번 질문해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허삼관이 맛보았던 돼지간볶음과 황주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