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로 살아온 나에게, 사회라는 존재는 늘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 시작하고, 또 관계 속에서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얽히고설킨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종종 본래의 나를 잃어버린다는 점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는 늘 모순이었다.
어릴 적부터 ”인간이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연스러움을 잃기 마련이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며, 종종 본래의 모습을 감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나답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내 본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의 기대에 맞춰야 하는 걸까? 왜 사회는 그렇게까지 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이런 사회적 요구들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사람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어느 관계에서건 타협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나 자신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가기는 정말 어려운 것일까?
인간이 ’ 사회적 동물‘이라는 철학적 명제는 인정한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계를 맺을수록,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지, 그 무게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른이 된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 어른‘이라는 역할이 낯설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그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점차 타협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후에 깨달은 것이다. 내가 받아들인 이 타협이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세상의 요구에 순응한 것일까?
이런 의문 속에서 나는 늘 자유를 찾고 싶었다. 개인주의자로서 나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과 사회 속에서 타협하며 살아가는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나의 자유가 얽혀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나는 그 자유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하루는 직장에서 오래된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는 나와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타인의 감정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자신의 행복보다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와의 대화 중, 나는 그에게 내 솔직한 의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어. 그런 관계가 정말 필요한 걸까?”
그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도 흐려지는 것 같아요. “
그의 말은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는 타인을 위한 희생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말에 나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가 나를 지우고 타인을 채워주는 세상에서 산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내가 조금씩 없어지는 대신, 무엇을 얻게 될까?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렸다. “자유는 필연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타협해야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그 관계 속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조금씩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주의자로 태어난 나는 여전히 사회를 불합리하게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나 역시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면, 나는 여전히 서투르지만 조금씩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