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오십 분 전을 기준으로 정확히 서른 하나가 되었습니다. 만으로는 아직 서른이지만요. [새해 복 많이 받아], [해피 뉴 이어]라는 익숙한 인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인생인 듯합니다. 아니, 어쩌면 잘 살아오지 못한 어른일지도 모르고요.
언젠가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게 마냥 기쁘거나 설레는 일은 아닌 게 되어갑니다. 어차피 올해도 작년처럼 힘들 게 뻔하거든요. 참 슬픈 말인데, 이제는 덤덤하기도 합니다. 그게 내 인생이겠거니 이제는 스스로 그런 삶을 받아들인 채 사나 봅니다.
인생 처음으로 남자 친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는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새해는 아니었지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그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TV 채널을 돌려 카운트 다운을 세었습니다.
-으으, 오빠 이제 진짜 마흔이야.
올해 앞자리가 바뀌었다며 탄식하는 그를, 저는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앞자리가 바뀐다는 건 슬퍼할 일이 아닌 그저 참으로 소중한,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거든요.
그와 저는 벌써 1년이란 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직장 동료로 그를 처음 알게 됐고, 1년 뒤 연인으로 발전한 내 첫 사람. 여자에게, 그리고 직장 동료에게 마음과 곁을 절대 내주지 않는 그와 친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서른의 나. 아직까지도 그와 내 마음의 크기가 같지 않다고 느끼는 바보 같은 서른한 살의 나. 일주일에 5일을 붙어 있기에 그만큼 공과 사를 더욱 또렷이 구분해야 했고, 작은 것 하나에도 예민해졌으며, 큰 상처를 끝으로 오랜 기간 연애를 하지 않았던 그의 연애세포를 깨우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우리. 그래서 더 어려웠던 우리의 1년.
이제는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 설렘보단 편안함이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는데도 요즘 들어 부쩍 서운하고 섭섭한 일이 잦아지고 있는 우리. 아니, 나.
-오빠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맞아?
언제나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하는 나와,
-맞춰가고 있고, 적응할 수 있어.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 것뿐이야. 네 기준이 처음하고 달라진 거고.
나에게서 보이는 낯선 모습일지라도 받아들이려는 그.
사실 저는 어쩌면 30년 동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연애를 꿈꿔왔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이 향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소중했으면서, 지금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차지 않는 걸까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덮는 다른 감정들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저는 늘 누구에게나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었으니까요. 그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그의 마음을 갖고 싶은 것뿐이겠지요.
함께 새해를 보내고, 아침을 맞아 떡국을 나눠 먹고 싶은 제 마음과 달리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적당한 데이트 후 각자 편안히 쉬길 원했던 그의 마음이 또다시 어긋나고야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