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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Mar 01. 2021

학교 뒤의 사람들

성인문해 교육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3월입니다.

입학식, 새 학교 새 학년, 새 친구. 3월이면 우리가 떠올리는 ‘학교’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을 하는 3월 2일 전에 글을 꼭 발행하려고 어제오늘 계속 고치고 고쳐 썼습니다. ‘학교 뒤의 학교’에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식을 하는 신입생이 있고 새 학년에 진급하고  새 친구를  기다리는 어른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야학 :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사회교육기관  

‘학교 뒤의 학교’를 우리는 흔히 ‘야학’이라고 합니다. 1967년 유네스코에서 처음 주장된 평생교육을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였고 평생교육기회 확대를 위해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이 야학, 한글교실, 학력인정기관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나무였습니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분이 셨습니다. 낮에는 아버지 가게에서 함께 일을 하셨고 저녁에는 집에 오시자마자 밀린 집안 살림을 하셨습니다. 젓갈을 넣지 않은 엄마의 김치는 지금도 그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는 더 이상 큰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엄마처럼 머리를 맞대고 받아쓰기를 봐주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그저 공책에 자를 대고 밑줄만 반듯하게 그어 주기만 했습니다. 


올해 칠순이 넘은 엄마는 중학생이 되셨습니다.

엄마는 야학을 10년을 다닌 후에야 당신의 생각과 딸에 대한 사랑을 문장으로 표현하게 되셨습니다. 어느 날은 편지를 보내오기도 하셨고 작년에는 한글교실 할머니들과 문집을 내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야학에 갈 수 없는 대신 엄마의 방학 숙제가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 집에 갔을 때 엄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방학숙제를 내놓으셨습니다. 혼자서는 너무 어려워  딸이 와서 같이 풀려고 남겨 둔 숙제들입니다. 

< 엄마에게서 처음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딸은 참 불친절합니다.  

“엄마! 이거 가로세로 낱말 퍼즐이네. 별로 안 어려운 거야... 아이참.. 다 틀리게 풀었네”

“너는 학교를 몇 개나 나왔으니 쉽지. 우리 반 사람들 중에서 이거 풀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거다.”

“그냥 엄마, 내일 아침에 알려주면 안 될까? 지금 밥 먹고 나니 너무 졸리다.”

“어이구! 너는 학교 선생이라는 애가 그래 가지고 학교에서 애들은 제대로 가르치냐?

 에휴! 우리 김 선생님 같은 사람도 정말 드물긴 드물어 “


우리 김 선생님은 엄마의 한글 문해학교 선생님입니다. 엄마에게 전해 들은 ‘우리 김 선생님'은 이랬습니다. 할머니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금방금방 넘어가지 않고 다시 찬찬히 알려 주십니다. 할머니들이 칼국수라도 대접하려고 하면 한사코 할머니들의 밥값을 치르십니다. 체험학습을 나가면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의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해주십니다. 드디어 성인문해학교 초등과정 졸업식에서 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한 번쯤 꼭 전하고 싶었던 마음속 진심을 전했습니다. 


"선생님, 엄마한테 선생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사실은 제가 학교 선생인데 선생님 같은 분이 진짜 선생님이에요. 너무 감사드려요 "


더 많은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울먹울먹 눈물이 왜 그렇게 나던지 ‘존경합니다’란 말을 미처 전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너무 아쉽습니다. 엄마가 야학을 다니셨기도 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외면하지 않는 교사’에 대해 생각했었습니다. 4년 전쯤 야학교사 자원봉사 신청을 위해  성인문해교실에 방문을 했습니다.  포니테일 머리를 한 강직한 인상의 김 교장이 물었습니다. 


‘왜 야학 교사를 하려고 하세요?’

“엄마가 오랫동안 야학을 다니셨어요. 그 감사함을 되갚고 싶었어요.

그리고 배운 사람으로서 저의 배움을 나눠서 어르신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덜어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배운 사람’ 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잘난 체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김 교장은 성인문해교육을 도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건 폭력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뒤늦은 배움으로 은행을 가고 간판을 읽고 버스를 타게 되는데 폭력적 관점이라고? 무척 낯설었습니다. 성인문해교육도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행복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육이 무엇을 위한, 무엇이 되기 위한 도구적 교육이 됐을 때 배움이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김 교장의 알 듯 말 듯한 말들은 여전히 알 듯 말 듯합니다. 배움으로 행복한 사람들. 그런 이유로 공부를 마친 후 야학 학생들은 함께 '밥'을  '함께' 지어먹으며 삶과 일상을 나누는 시간을 반드시 가진다고 합니다. 엄마는 야학을 다니면서 공부도 하셨지만, 비슷한 나이와 경험을 가진 할머니들과 만남을 통해 사람 사이의 어울림 속에서 행복해하셨습니다. 야학으로 엄마에게 삶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배우는 공부’ 

성인문해교육을 ‘사람’ 그 자체에 목적을 둔 김 교장의 교육철학이 낯설었지만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매주 2회씩 오후 7시부터 수학을 지도했는데 수학을 택한 이유는 수학의 지식 체계가 점층적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지도하기 수월할 것이란 얕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99 다음에 910이라고 쓰는 어르신이 계시다면 어떻게 지도를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성인문해교육을 한글을 익히고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등교육을 지도하는 교사보다 성인문해교육을 지도하는 야학 교사는 쉬운 것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우월성의 위치에서 비껴 나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 그 자체의 난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현재 경험과 수준에 맞게 지식을 구조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야학 교사를 하며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위에서 처럼 수의 지식 체계가 전혀 없는 어르신을 지도하는 방법에 대한 답을 구하셨나요? 

지식의 축적된 경험이 많을수록 학습자의 눈높이로 내려오는 게 어렵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 서 학습자를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롤러코스터의 수직하강처럼 높은 지식의 수준에서 가장 낮은 지식의 수준으로 경험을 낮추어야 하는데 가르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인문해교육은 학습 경험이 전혀 없는 성인 문해자들에게 현재의 어르신이 머물고 있는 경험과 연결 지어서  ‘그래도’ 가르쳐야 하는 어려움이 가장 큽니다.


저는 어떻게 가르쳐드렸냐고요? (아..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어버님! 맨 뒤의 숫자 9 다음의 수는 10이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10이 될 때는 그냥 0만 쓰세요.  그 대신 1은 어디로 가냐면요. 요기 앞의 9 있잖아요. 얘가 하나 커지는 거예요.  9 다음의 수는 10이니까.. 10으로 짠! 변신시켜주시면 돼요.(휴우...)”


학교에서 대회에 출전하는 아이들을 방과 후에 지도해야 했기 때문에 야학 봉사는 1학기를 못 채웠습니다. 야학교사를 그만두면서 한 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50대 중반의 뇌성마비가 있던 분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일당이 깎인다고 속상해하셨습니다. 시험 보기 전에 대충 훑어보고도 붙는다는 시험 같지 않은 시험 -운전면허 필기시험  합격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은 소원이었습니다.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3월 2일에 개학하는 '학교 뒤의 또 다른 학교'가 있습니다.'학교 뒤의 학교'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묵묵하게 성인문해교육을 위해 밤을 밝히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 자신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어른 학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랫마을 홈리스 야학에서 일 년 동안 전각 수업을 한 나의 오랜 친구 이 작가에게도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사진출처: 정을순 할머니 숨바꼭질  제공: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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