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는 일요일이다. 창 밖 너머 아카시아 나무도 할 일 없이 흔들리고, 뜨거운 볕을 이고 있는 차들도 할 일 없이 엎드려있다. 무더운 여름 보사노바와 함께라면 괜찮아라는 다소 긴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심보선의 시에 곁들여 일요일 아침을 먹는다. 문득 오늘이 오일장이구나!
사람이 드문 북유럽의 끝에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나머지 장이 서는 날이면 특별한 용무가 없더라도 먼길을 나와 장 주변을 서성이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과 사람 틈 사이에서 쓸모없을지라도 말문을 열고 싶은 나의 간절함은 오일장에서 산 거슬거슬한 호박잎과 같이 검은 봉다리에 담겨 도로 돌아왔다.
슴슴하게 된장을 풀고 물이 끓는 동안 호박잎의 풋물을 치댄다. 풋물을 치대면서 오래 가슴에 여미고 살고 있는 그 여자를 생각한다. 많은 서랍을 가지고 있던 여자였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지만 꽤 괜찮은 시간을 함께 나눴었다. 여자는 멀리 여행을 떠날 때 기르는 고양이를 내게 맡겼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선물했다. 버스가 끊긴 늦은 밤 찬 바람을 발그레하게 묻히고 불쑥 찾아와서는 공지천 포장마차에 데려다 달라고도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면서 함박 웃던 그 여자는 간혹 먼 나라에서 드문드문 엽서를 보내오다 오래 삶은 빨래처럼 여자의 소식은 바래졌다.
할 일 없는 일요일 오후, 오일장에서 슴슴한 배추적에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그 여자가 꾹꾹 그리웁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는 믿음이 나를 그 여자 앞에 데려다주었으면 좋겠다. 할 일 없는 일요일을 보내는 당신에게도 이 믿음이 통했으면 좋겠다. 당신도 누군가 꾹꾹 그리웁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