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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향기

연꽃 만나고 오는 바람같이

by 박은실

두 물이 만나는 양수리로 향했다.

연꽃이 제철이려나.

전국이 기습 폭우로 물난리가 났는데, 연꽃 보러 간다고 하면 뭇사람의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도착한 두물머리 하늘은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맑은 파란색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우후청천책, 비 개인 뒤의 먼 하늘색이 바로 이런 색을 말하는 듯싶었다. 습기 머금은 공기는 다소 무거웠지만, 연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가벼웠다.


세찬 비바람에 상처를 입은 연꽃잎이, 산다는 건 때로는 느닷없이 소낙비를 맞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그렇지만 진흙투성이에서 흙 한 톨 묻히지 않고 피어난 연꽃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카페에서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입을 축이고 다산 생태공원의 연꽃을 만나러 차 머리를 돌렸다.


강변의 연꽃은 아직 봉오리를 오므린 채 하늘을 향해 뾰족이 촛불처럼 솟아 있었다.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강 저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흙탕물이 된 먼 강에서 건들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두물, 북한강과 남한강이 어우렁더우렁 만나 서울로 흐르고 있었다.

산다는 게 별것이더냐. 이렇게 섞여서 흘러가는 것이겠지. 얽히고설켜 물비린내를 풍기면서도 함께 만나 흘러가는 것이겠지. 그러다 가끔 슴슴한 연꽃 향기에 취해도 보는 것이겠지.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내 옷깃에 코를 대어보았다. 물비린내를 제치고 맑은 녹차 내음 같은 연한 연꽃 향기가 묻어났다.

입가에는 커피향 대신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시구가 조랑조랑 매달렸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 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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